“군산조선소 회생 대선공약 지켜라”… 구조조정 발목 잡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9일 03시 00분


현대重 폐쇄 3주째… 들썩이는 군산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전북 군산에 위치한 신산테크의 올해 조선업종 매출은 사실상 제로다. 한때 200명 넘게 고용했지만 현재 직원은 40여 명. 군산 조선업계에 일감이 넘치던 2008년, 대출로 140억 원을 투자해 공장을 지었다. 선체 안에 사람의 갈비뼈 역할을 하는 보강재를 넣는 공사로 2015년에는 9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이달 들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이 중단되면서 일감은 사라졌다. 이 회사의 김평옥 대표는 “이달부터 갚아야 하는 대출 원금과 이자가 수억 원이지만 갚을 방법이 없다. 죽고 싶은 심정이다”고 말했다.

2008년 신설된 군산대 조선공학과는 요즘 폐지론까지 나온다. 한때는 매년 배출되는 졸업생 30명 전원의 취업이 100% 보장될 정도로 인기였다. 이 대학 염덕준 교수는 “올해 졸업생 중 절반만 취업했지만 조선업종으로 간 학생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북 군산조선소의 가동이 1일 중단되자 지역사회와 협력 기업들이 전방위적으로 후폭풍을 맞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조선소 존치’를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사실이 겹치면서 지역사회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 “대통령이 해결해 줄 것이다”

군산조선소 직원들이 거주하던 숙소와 식당 등이 밀집한 전북 군산시 오식도동 일대에는 요즘 인적이 거의 없다. 몇 개월 사이에 조선업종에 종사하던 5000여 명이 떠나 원룸 공실률은 70%가 넘었다. 시내 아파트 가격은 30%까지 떨어져 곳곳에는 공장 매물을 알리는 현수막만 나부끼고 있다.

조선업 협력업체들과 상인, 젊은 구직자들의 유일한 희망은 문 대통령이 “조선소를 존치시키겠다”고 언급한 대선 공약이다. 당선 이후에도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군산조선소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군산의 한 지역민은 “대통령 공약이 다 지켜지는데 군산조선소를 살리겠다는 공약만 안 지키면 되겠느냐”며 희망을 내비쳤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중앙정부가 이달 안에 관련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대선 공약인 만큼 조선소의 즉각 재가동이 주요 대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 “울산 일감이라도 가져오자”

수년간의 수주 절벽으로 군산은 물론이고 울산 본사의 일부 독마저 올 하반기(7∼12월)에 추가로 폐쇄해야 하는 현대중공업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은 “군산조선소를 가동하고 싶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일감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며 “일감이 없는 상황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조선소부터 가동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군산지역의 생각은 다르다. 정부가 선박펀드로 우선 몇 척이라도 발주해 일을 하자는 것이다. 이미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현대상선 발주물량 중 절반(5척)이라도 군산으로 다시 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북도의회 일각에서는 “내년 2월경부터 군산조선소가 재가동을 할 것”이라는 성급한 말까지 나오고 있다. 현장 작업이 시작되려면 최소 6∼8개월의 설계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한 언급이다. 도의회가 현대중공업을 압박하는 것이다.

일부 협력업체는 아예 울산 물량을 군산으로 가져오자고 주장한다. 조선업은 설계가 끝나면 블록별로 작업이 이뤄진 뒤 블록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배를 제작한다. 울산에서 제작한 블록을 군산으로 옮겨 조립하면 당장 일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업계 관계자는 “울산에서 블록을 만들어 군산으로 가져가 배를 만든다면 대략 1000억 원 정도가 더 들 것”이라고 말했다.

○ 힘 빠지는 업계 구조조정


청와대 앞 시위 나선 군산시의회 의장 박정희 군산시의회 의장이 17일 청와대 앞에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재가동을 요구하는 1인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군산시의회 제공
청와대 앞 시위 나선 군산시의회 의장 박정희 군산시의회 의장이 17일 청와대 앞에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재가동을 요구하는 1인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군산시의회 제공
현 정부가 일자리 창출 정책에 힘을 쏟으면서 조선업의 구조조정 동력은 힘이 빠지고 있다. 기업 경영에 경제적 효율성이 아닌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서 이른바 ‘폴리코노미(Poli-conomy)’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경부터 두 차례에 걸쳐 7조 원이 넘는 유동성 지원을 받은 대우조선은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16일 인사청문 답변 자료에서 “대우조선의 자구계획 목표가 5조3000억 원이지만 이행 실적이 2조 원 수준으로 다소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한국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성동조선이 5월에 수주한 선박에 대한 정부 보증(RG)기준을 완화했다. RG는 계약대로 배가 인도되지 못하면 선주가 조선업체에 준 선수금을 금융회사가 선주에게 돌려준다는 보증이다. 성동조선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의 협력을 약속하는 확약서의 내용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에서 채권단이 보증조건까지 완화해준 것이다.

최근 분위기 때문에 산업계 일각에서는 조선업 구조조정을 새 정부가 사실상 방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조선업이 다시 호황 사이클로 들어가기만을 기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업 상황이 나아지면 일자리도 조금씩 늘어나고 구조조정 얘기도 들어갈 것이라는 계산이다. 올 상반기(1∼6월) 국내 조선업계는 283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를 수주해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주량을 기록했다. 수년간의 수주 절벽으로 지금은 일감 없이 버티는 상황이지만 조선산업이 곧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의 수주 회복세는 수년간 워낙 실적이 없는 데 따른 기저효과다. 2011년과 같은 호황이 다시 오기는 힘들다. 원칙에 따라 구조조정을 진행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군산조선소#회생#대선공약#구조조정#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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