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금형-용접 등 제조업 근간기업, 마진율 낮아 외국인 근로자 의존
최저임금 인상에 수익 직격탄
정부 보전기준 맞추려 사람 안뽑고 “버틸 자신 없다” 폐업 고민 속출
“오죽 답답하면 직원 안 시키고 직접 계산기 들고 인건비를 계산했겠습니까.”
24일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에서 만난 보은산업 이준근 사장(65)은 책상에 어지럽게 널린 6월 외국인 노동자 월급 명세서를 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로 결정된 뒤 이 대표는 보은산업에서 근무하는 12명의 외국인 노동자 임금 상승분을 계산했다. 기본급 상승 금액만 따져도 ‘월 400만 원, 1년 4800만 원’이 추가로 들었다. 특근이나 잔업을 포함하면 액수는 더 늘어난다. 어깨를 떨어뜨린 이 대표는 “버틸 여력이 없다. ‘폐업’이라는 결론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사이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결정에 대한 불만이 끓어오르고 있다. 가장 걱정이 많은 곳은 이른바 ‘뿌리산업’ 기업들. 2011년 7월 제정된 ‘뿌리산업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주조, 금형, 용접, 소성가공, 표면처리, 열처리 등 제조업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을 담당하는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일정 물량을 수주해 납품 총액과 인건비의 차액만큼을 수익으로 갖는다. 마진을 놓고 봐도 1∼2%에 불과하고 저숙련·저임금 노동에 기댄 사업인 탓에 생산성을 높이거나 부가가치를 더해 이익을 늘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6.4%의 인건비 상승을 상쇄할 만큼 납품 단가가 오르지 않는다면 곧바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규직 감축을 고려하는 곳도 늘고 있다. 쇳물을 녹여 주조 및 가공해 연마공장으로 보내는 ㈜비티원은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발표 후 채용공고를 철회했다.
㈜비티원은 현재 내·외국인 생산직 및 관리직을 포함해 근로자 30여 명을 고용 중이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직후인 16일 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 보전책으로 근로자 30명 미만인 사업장에 최저임금 중 일부(9%)를 지원하기로 밝히면서 추가 채용을 포기한 것이다. ㈜비티원은 현재 연 5억500만 원 정도인 인건비가 내년이면 5억8700만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8000여 만 원의 추가 인건비를 고려할 때 정부 보전책 기준에 맞추기 위해 오히려 사람을 줄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비티원 박성제 사장(59)은 “정규직을 채용하기보다 그때그때 수주 물량에 맞춰 일용직을 고용하는 방식을 고려 중”이라며 “정부가 인건비 부담 증가의 일정 부분을 재정으로 보전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구체적 요건조차 나오지 않은 데다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몰라 너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일부 중소기업 사이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의 최대 수혜자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근로계약을 하는 단순노동직 대부분은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201만 명 중 단순노무직 위주의 제조업 취업 외국인은 26만9000여 명(2017년 5월 기준)이다. 올해 7조7215억 원인 인건비는 내년 최저임금 상승률을 적용하면 8조7967억 원으로 오른다. 중소기업 부담액이 약 1조752억 원 증가한다는 뜻이다. 중기중앙회는 한 달 평균 209시간 일하는 것을 기준으로 기본급과 초과근로수당 등을 합산했다.
외국인 노동자는 모국으로 송금하는 돈이 많고 국내 소비가 적기 때문에 소득 주도 성장 효과도 적다. 보은산업에 근무하는 캄보디아 외국인 노동자 왓(Wat·가명) 씨는 지난달 하루 8시간씩 22일을 근무하고 잔업과 특근을 30시간씩 해 176만2000원을 받았다. 왓 씨는 현재 월급의 80% 정도를 가족에게 보내고 있다. 내년에는 월급이 늘어난 만큼 가족에게 더 많은 돈을 송금할 생각이다.
이영면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향은 3, 4차 협력사 등 몇 년 후를 내다보지 못하는 경영을 하는 영세 중소기업으로 갈수록 커질 가능성이 크다. 지속성이 없는 정부의 임금 보전 방식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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