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드림]글로벌 인턴 도전 나선 한국 청년들 <上>
본보-과기부 ‘글로벌 인턴십’ 1기 5명, 스타트업 도전기
“당신 회사 ‘지니어스 팩토리’의 제품을 좀 소개해 주겠어요?”
미국 뉴욕에서 5월 15∼17일 열린 2017 테크크런치(TechCrunch)는 유망 스타트업들이 모여 투자자와 파트너사를 찾는 행사다. 경쟁사를 분석하고 자사 기술과 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정직원이 아닌 인턴 최한별 씨(22·여·세종대 4학년)는 큰 숨을 내쉬면서 쿵쾅대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그러곤 영어로 밤새 외운 제품의 강점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24일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만난 최 씨는 “영어 표현이 익숙하지 않아 회사 영문 팸플릿을 통째로 외웠는데 투자자들이 흥미 있게 들어줘서 기뻤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명함을 교환하는 ‘떨리는’ 경험도 했다. 3월까지만 해도 최 씨는 그저 소프트웨어(SW) 코딩을 즐거워한 평범한 디지털콘텐츠학과 학생이었다. 4월 3일 시작된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학점연계 프로젝트 인턴십’(글로벌 인턴십) 참가는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최 씨는 8월 18일 인턴 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지니어스 팩토리의 정규직원이 된다. 내년 2월 졸업할 때까지 한국사무소에서 일하다 회사의 비자 신청 도움을 받아 미국 본사로 다시 건너올 예정이다.
한국 청년들의 과감한 도전이 ‘세계 스타트업의 본산지’ 실리콘밸리를 뚫어냈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 실리콘밸리 글로벌혁신센터(KIC)가 공동으로 진행한 글로벌 인턴십 1기 프로그램 참가자들이다. 인턴 5명 중 최 씨와 박일권 씨(24·서울과학기술대 4학년) 등 2명은 이미 정규직 채용을 약속받았고 나머지 인턴들이 일한 스타트업들도 큰 만족도를 보였다.
▼“업무 바로 투입할 실력”세계 최고 벤처 무대서 ‘엄지 척’▼
올해 처음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국내 대학생이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학점도 인정받는다. 선진 스타트업 문화를 몸소 체험하면서 새로운 진로를 찾거나 창업에 대한 노하우를 배우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난 속에서 갈 길을 잃은 취업준비생들이 해외에서 도전의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인턴 채용 기준은 엄격하다. 하지만 학벌이나 영어 점수에는 관심이 없다. 이곳에서 만난 최고경영자(CEO)들은 “인턴과 직원을 뽑는 기준은 다르지 않다. 인턴도 학생이나 손님이라 생각하지 말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한미 간 화상 면접을 통과해 최종 선발된 인턴들은 모두 저돌성과 실무능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 “계급장 떼고 오직 실력”
펄즈시스템스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될 박일권 씨는 “같이 인턴 면접을 봤던 친구가 스펙이 더 좋아서 주변에서도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그는 “4 대 1 화상면접 당시 영어 질문이 잘 들리지 않았는데 조금 창피해도 다시 천천히 말해달라고 요청했었다”고 했다. 데이비드 정 펄즈시스템스 대표는 “인턴이 아니라 팀 멤버를 뽑는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박일권 님은 우리 회사에 꼭 맞는 인재였다”고 말했다.
이제형 스트라티오 대표는 박인규 씨(21·KAIST 3학년)와 면접을 시작한 지 5분 만에 마음속으로 ‘오케이(OK)’라고 외쳤다고 했다. 이 대표는 “실리콘밸리는 아버지가 누군지, 인종이 뭔지, 학점이 얼마인지는 전혀 중요치 않다. 영어 점수도 궁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말주변이 없더라도 몸으로 체득한 실무경력은 고스란히 드러나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CEO들은 한목소리로 “평생 엔지니어로 코딩만 하다 죽고 싶다”는 ‘미친 사람’을 원한다고 했다. 스펙과 영어 점수 쌓기, 자기소개서용 대외활동이나 면접 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는 취업준비생들은 뚫어내기 힘든 기준이다.
4개월은 비록 짧지만 한국 청년들이 실력을 입증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최 씨를 선발한 이주환 지니어스 팩토리 대표는 “스탠퍼드대의 경영대와 이공계열 학과에서 분기별로 각각 8명씩 인턴을 뽑아왔다. 한별 씨가 오히려 인턴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깨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최 씨의 강점은 SW 하나에 매진했다는 점이다. 대학에도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SW 특기로 입학했다. 프로그래밍 특기를 활용해 학교 프로젝트와 대외활동에 참여했고 스스로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기도 했다. 이 대표가 최 씨를 뽑았던 것도 곧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실력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결정은 이 대표에게도 최 씨에게도 엄지를 세울 만큼 만족스러웠다.
○ “매일 창업자들을 보며 열정을 배운다”
이공계 학생들의 요즘 꿈은 뭘까. 대기업, 공공기관 등에 취업하는 것부터 우선 떠오른다. 부모의 조언도 그렇고, 취업준비생 스스로도 ‘안정적 일자리’는 최우선 가치다. 창업을 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은 취업이 안 돼 어려운 길을 간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인턴들은 “창업과 도전을 바라보는 마음속 자세가 달라졌다”고 했다.
싱크토미에서 일하는 허한슬 씨(21·여·세종대 3학년)는 예전에는 창업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싱크토미 같은 스타트업이 100여 개나 입주한 ‘GSV 랩스’에 출근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허 씨는 “젊은 스타트업 대표와 투자자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란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마노지 페르난드 싱크토미 대표 역시 허 씨가 생각의 전환을 하도록 만든 인물이다. 페르난드 대표는 싱크토미가 6번째 회사다. 그는 “5개 회사 중 잘돼서 판 것도 있지만 두 개는 잘 안됐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게 나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한 뒤 다음 스텝으로 간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최악은 아무것도 안 해본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인턴 기간에 꿈이 바뀌기도 한다. 홍영기 씨(25·고려대 4학년)는 UJET에 다니면서 프로그램 개발자를 꿈꾸게 됐다. 그는 “이전에는 막연하게 큰 회사에서 기획 업무를 하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인턴으로 일하면서 개발자의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인규 씨는 “학교에서 한 주에 하나씩 과제를 하고 발표를 했을 때만 해도 ‘시스템 기획과 개발이 힘들다’고 느꼈다. 그런데 기업에서, 그것도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프로젝트 기획부터 개발까지를 함께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글로벌 인턴십 2기 인턴 5명은 다음 달 말 실리콘밸리로 출발한다. 인턴십 종료까지 20여 일 앞둔 1기 인턴들은 내년이든 후년이든 지방의 SW 실력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많이 도전하길 희망했다. 1기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경우 정부로부터 항공료, 인턴 비자 발급비, 해외 체재비 등 1500만 원을 지원받았다. 현지 기업에서는 월 1000달러씩 5개월간 월급을 지급했다. 허 씨는 “대개 해외 인턴십은 상당한 금액을 개인이 지불하고 무급으로 활동한다고 하는데 이런 좋은 인턴십 프로그램이 빨리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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