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대중화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부에선 ‘귀족 스포츠’로 바라봅니다. 제일기획, 이노션, 현대차그룹 등에서 마케팅 전략을 담당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53)가 ‘돈 많은 중년 남성이 즐기는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강한 골프의 편견을 깨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골프를 치지 않는 박 대표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골프 이야기를 주 1회 디지털에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1. <컴퓨터 게임으로 골프를 배우다>
또래 40,50대 남자들을 만나면 꼭 “언제 필드 한 번 나가시죠”라고 한다. ‘소주 한 잔 하자’ ‘식사 한 번 하자’는 말보다 더 자주 듣는다. 그럴 때마다 “저는 골프를 치지 않습니다”라고 답하면 모두 깜짝 놀란다. “아니 미국에서 몇 년이나 사셨다면서 골프도 안 하셨어요?”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1991년 8월부터 2년 간 미국 뉴욕대 스턴 MBA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고 1998년 12월부터 2003년 3월까지 제일기획 미주법인에서 브랜드전략 담당으로 일했다. 약 7년 간 미국에 살았으니 골프를 칠 기회는 제법 많았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골프를 한 적이 없다. 딱히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골프에 나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수없이 골프를 칠 뻔 한 위기(?)가 있었지만 용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넘겼다.
하지만 워낙 주변에 골프를 좋아하고 잘 치는 사람들이 많아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골프 얘기가 제법 된다. ‘골프치지 않는 자의 골프 이야기’를 쓰고 싶은 이유다.
주재원으로 일하기 직전인 1997년 12월부터 1998년 6월까지 뉴욕에 7개월 간 장기 출장을 갔다. 일종의 사전 연수였다. 당시 뉴욕 인근 뉴저지 주의 조그마한 호텔에 투숙하며 제일기획 미주법인으로 출퇴근했다.
당시 한국에서 함께 출장을 갔던 회사 선배는 손꼽히는 골프광이었다. 그는 영하 15~20도를 오가는 차가운 겨울에도 매일 연습장으로 출퇴근했다. 주말에는 우리 호텔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인 뉴저지 남단의 애틀랜틱시티에 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카지노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애틀랜틱시티에는 카지노 못지않게 골프장이 많다.
그 선배는 “땅이 꽁꽁 얼어 스케이트장 위에서 골프를 치는 것 같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매주 왕복 4시간 차를 몰아 애틀랜틱시티의 골프장에 갔다. 추위를 많이 타는 필자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나고 보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말에 골프장에 가는 것은 미국 교포나 주재원들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필자와 같은 한국인 주재원, 특히 삼성을 포함한 다른 한국 대기업의 주재원을 고객으로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골프를 치지 않으면 비즈니스 파트너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골프장에서 같이 운동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대화에 낄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 이에 필자가 택한 방법이 바로 컴퓨터 골프 게임 ‘PGA 투어 골프’였다. 이 게임으로 드라이버, 우드, 아이언, 퍼터와 같은 골프채 명칭, 각 채의 활용도, 훅·슬라이스·멀리건·컨시드와 같은 골프 용어들을 배웠다.
특히 PGA 투어 골프에는 각국 유명 골프장의 코스, 모양, 설계자, 지역 특색, 유명인사와의 에피소드들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골프 역사책 수준이었다. 예를 들어 US오픈, 브리티시오픈, PGA 챔피언십과 함께 4대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마스터스를 보자. 마스터스가 열리는 조지아 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코스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지어졌고 코스 특색이 어떻고 어떤 유명인이 이 곳에서 플레이했으며 등등을 포함해 조지아 주 역사까지 실려 있는 식이다.
몇 달간 게임을 열심히 하다보니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수준에 이르렀다. 고객이 “내가 미국 유명 골프장 A를 몇 번 다녀왔다”고 말하면 “아 거기요. 거기 무척 좋죠”라고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필자가 골프를 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회사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쳐다보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골프, 부동산, 술…. 혹자가 알려준 대한민국 50대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3가지다. 트렌드를 읽어가며 마케팅을 해야 하는 필자로선 앞으로도 골프를 계속 눈여겨봐야 하는 신세다. 비록 앞으로도 골프채를 직접 잡을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간접 경험한 다양한 골프 이야기를 계속 들려드리겠다.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parkjaehang@gmail.com
:: 필자는?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미래연구실장, 기아차 마케팅전략실장 등을 역임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프랑스계 다국적 마케팅기업 하바스코리아의 전략부문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 ‘브랜드마인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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