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이 젊어지고 있다. 더 이상 낡고 오래된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청년 상인들이 전통시장 속으로 들어와 활기를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청년 상인들의 활약상을 담은 ‘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를 12회에 걸쳐 소개한다. 》
장사가 어렵다는 말은 개업 첫날부터 실감했다. 생맥주 따르는 일조차 간단치 않았다. 원하는 만큼 맥주 거품을 담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고, 시원해야 할 맥주가 미지근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테이블마다 다른 결제금액은 복잡한 수학문제처럼 헷갈렸다. 포스트잇을 테이블마다 붙여 주문 음식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연속인 상황, 그래도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생각이 앞서는 요즘이다. 창업이란 오랜 꿈을 이룬 덕분이다. 경기 평택시 통복시장 청년몰에 ‘불타는 랍스터’를 창업한 지 이제 막 50여 일을 맞는 최민 대표(39), 표수경 씨(36) 부부의 이야기다. 1일 불타는랍스터 매장에서 만난 최 대표는 “하루하루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는 중”이라고 말했다.
10년이 넘는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창업’이란 꿈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한 계기는 우연찮게 찾아왔다. 지난해 10월 주말 바람을 쐴 겸 아내 표 씨와 함께 서울 명동 나들이에 나선 최 대표는 길거리 음식으로 ‘변신’한 랍스터를 처음 봤다. 1만5000원짜리 랍스터를 노점에서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은 최 대표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최 대표는 “랍스터가 길거리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가격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춘 것만으로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수산물 무역회사에서 구매담당 팀장으로 근무했던 경험 덕분에 랍스터 원가와 유통구조를 꿰뚫고 있던 최 대표는 ‘1만5000원도 비싸다’고 생각했다. 불타는랍스터의 ‘랍스터 치즈버터구이 9900원’ 메뉴의 탄생 배경이다.
문제는 요리였다. 최 대표뿐 아니라 표 씨 역시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운 적이 없었다. 삶기만 해도 맛있는 랍스터라지만 단순히 익혀 팔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불타는랍스터만의 소스가 필요했다. 인터넷 요리 연구가의 블로그를 뒤지고 전국 유명한 랍스터 가게를 직접 찾아 소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해외의 유명 요리 연구가에게 무작정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 “사과, 바나나, 파인애플 등 단맛이 있는 과일을 버터, 치즈와 섞어 다양한 배합을 만들어보길 권한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이를 기초로 최 대표와 아내가 소스 개발을 위해 쏟은 시간만 6개월, 이렇게 ‘비법 소스’가 완성됐다. 최 대표는 “소스를 완성한 뒤 야시장에 직접 나가 팔았는데 준비한 재료가 금방 동이 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성공을 확신한 최 대표는 곧바로 사직서를 내고 본격적인 창업 준비를 시작했다.
불타는랍스터는 평택시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통복시장로 13길 ‘청년몰’에 터를 잡고 있다. 청년몰은 전통시장 내 빈 점포를 활용해 청년 상인이 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중소기업청 사업. 최 대표 역시 평택 통복시장 청년몰 사업단이 마련한 창업 실무교육, 컨설팅 등을 창업의 디딤돌로 삼았다.
최 대표는 “1년 임차료, 인테리어 비용 60% 등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청년몰이란 브랜드 홍보가 그대로 불타는랍스터의 홍보·마케팅 수단이 돼 창업 초기 심적인 부담을 많이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불타는랍스터 주변에 함께 자리 잡은 청년몰 사업단 동기들은 최 대표가 가장 의지하는 ‘동업자’이기도 하다. 국수, 튀김, 일본라멘, 디저트카페 등 음식점부터 책방, 친환경 인테리어 식물, 사진관 등 각각 창업 아이템은 다르지만 가게 운영에 대한 노하우는 숨김없이 공유한다. 불타는랍스터 역시 메뉴뿐 아니라 가게 테이블 배치 방식까지 이들의 피드백을 거쳤다. 청년몰 내에서 일본라멘전문점 히가시를 운영하는 김동혁 대표는 “조리에 대한 노하우뿐 아니라 가게 운영에 서로 도움이 될 만한 소식은 스크랩해 건네줄 정도로 친밀감이 높다”고 말했다.
6월 청년몰이 생기기 전 통복시장은 여느 전통시장처럼 젊은 고객이 사라져가는 숙제를 안고 있는 곳이었다. 1953년 개장해 700여 개의 점포가 밀집한 곳이지만 상인 10명 중 8명이 50대 이상인 상황. 그러나 청년몰의 청년상인들이 입주한 뒤 젊은층 고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
불타는랍스터는 현재 평일 50만∼60만 원, 주말 80만∼100만 원씩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퇴근 후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마시려는 20, 30대 직장인을 ‘단골손님’으로 만들자는 전략이 주효했다. 표 씨가 개발한 랍스터를 이용한 샌드위치 ‘랍스터롤’은 통복시장 인근 미군부대 커뮤니티 사이트에 ‘꼭 먹어봐야 할 샌드위치’로 소개되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생겼다.
“창업 초기 ‘연착륙’에 성공한 불타는랍스터이지만 여전히 숙제는 남아있다”는 최 대표다. 수산물 수입업체 경험으로 대형 호텔에 들어가는 랍스터와 같은 가격으로 공수해오고 있지만 불타는랍스터만의 판로가 없다. 요리에 대한 미숙함도 숙제다. 랍스터 치즈버터구이, 랍스터롤 외에 이렇다 할 주력 메뉴도 없다. ‘메뉴가 단출하다’는 평가를 벗어나기 위해 매일 밤 퇴근한 후 새 메뉴 개발을 위해 밤잠도 설치는 중이다.
인터뷰 말미 최 대표에게 ‘직장생활보다 장사가 훨씬 어렵지 않은가’라고 묻자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솔직히 아직 부모님뿐 아니라 형제, 친구들도 제 창업 사실을 모릅니다. 예상보다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성공적이기는 하지만 일주일에도 몇 번씩 자리 배치를 바꿔볼 만큼 시행착오를 겪는 중입니다. 몸도 고되고, 심적 부담감도 크지만 ‘즐겁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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