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의 모험, 6차산업을 일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8일 03시 00분


[벤처농부 100만 시대 열자]<5> 인천 백령도 ‘27세 여성농부’ 김을남씨

인천 백령도에 하나밖에 없는 딸기농장을 운영하는 ‘섬처녀 농부’ 김을남 씨(오른쪽)가 딸기 수확철인 5월 말 자신의 스마트팜을 찾은 부모와 함께했다. 백령도 연꽃마을 제공
인천 백령도에 하나밖에 없는 딸기농장을 운영하는 ‘섬처녀 농부’ 김을남 씨(오른쪽)가 딸기 수확철인 5월 말 자신의 스마트팜을 찾은 부모와 함께했다. 백령도 연꽃마을 제공

“섬이다 보니 문화생활이랄 게 별로 없어요. 고구마 캐기가 고작이던 백령도 초등학생들을 초청해 밭에서 딸기를 따게 하고, 딴 딸기로 청과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게 하니 참 즐거워하더라고요. 이런 농장체험 프로그램도 계속해야죠.”

서해 최북단 섬, 인천 백령도에서 유일한 딸기농장을 운영하는 김을남 씨(27·여). 3년 전 을남 씨가 ‘용감하게’ 딸기 농사에 뛰어들 때 그를 주목한 섬사람은 별로 없었다. 북녘 섬의 쌀쌀하고 습한 날씨에 딸기가 잘 자랄까 싶었다. 하지만 당도 높은 딸기를 생산하고 스마트팜까지 일구게 되자 어엿한 농부 대접을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을남 씨의 딸기농장이 있는 백령도 연꽃마을에서는 제1회 백령심청연꽃축제가 열렸다. 을남 씨의 아버지 김진일 씨(60)는 30년 전 폐결핵 치료를 위해 공기 맑은 백령도로 옮겨 왔다. 건강을 되찾으면서 딸까지 낳게 되자 아예 정착하기로 했다. 10년 전 백령도에서 자생하는 홍련(紅蓮)씨를 구해 연꽃밭 7만 m²를 조성했다. 이날 축제는 연꽃마을 ‘촌장’을 자처하는 그가 옹진군의 후원을 받아 연 것이다. 그런데 축제장을 찾은 지인들에게 아버지 진일 씨는 “고집불통 딸이 나보다 농사로 크게 성공할 것 같다”며 연꽃보다 을남 씨를 자랑했다.

연꽃 20여 종이 자라는 연꽃마을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을남 씨가 정성을 쏟는 딸기농장(비닐하우스)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토경(土耕)재배로 딸기 농사를 시작한 텃밭이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스마트팜 비닐하우스로 변신했다. 재배 면적도 300m²에서 2000m²로 늘어났다. 고객용 펜션 4개동을 갖춘 연꽃마을은 덩치만 컸지 수익성이나 운영 효율면에서 딸기농장보다 못하다는 게 진일 씨의 평가다.

을남 씨가 3년 만에 촉망받는 ‘미래 농부’로 성장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그는 백령도에서 태어나 유치원과 초중고교까지 마쳤지만 미래는 막막하게만 보였다. 굳이 육지에 있는 대학에 갈 생각은 하지 않던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백령도에 파견 나온 옹진군농업기술센터 직원의 권유를 받아 국립한국농수산대에 진학했다.

“화훼학을 전공하던 2학년 때 해외 실습을 미국 플로리다 꽃 농장으로 갔어요. 엄청나게 큰 농장에서 꽃을 키우면서 셰이크나 케이크 같은 로컬푸드(local food·고장 음식)를 파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을남 씨는 대학 졸업 직후 연꽃마을로 돌아왔다. 빈 땅에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고랑을 파서 딸기를 심었다. 을남 씨가 딸기 재배에 뛰어들려고 하자 진일 씨는 “모든 뒤치다꺼리를 내가 할 것 같다”며 만류했다. 섬이지만 어업보다 농업이 발달한 백령도에서는 작황이 좋은 고추가 비닐하우스 최고 인기 작물이다. 을남 씨로서는 모험을 시작한 셈이었다.

“백령도에서 딸기 농사라…. 잘되리라는 생각은 많지 않아서 실험적으로 작게 시작했어요. 처음이니까 작업이 힘들고 생산량도 많지 않았지요.”

전국의 우수 딸기농장을 찾아다닌 것도 이 때문이었다. 모르는 게 많으니 배워야 했다. 이름난 다른 지역의 딸기 농가와는 이후 인터넷으로 교류하며 다양한 지식을 쌓았다. 자신감도 조금씩 생겼다.

김 씨가 스마트팜에서 생산한 딸기.
김 씨가 스마트팜에서 생산한 딸기.

2015년 첫 수확한 딸기는 당도는 제법 높았지만 수량이 적어 대부분 선물로 나눠줬다. 이런 경험 덕분인지 을남 씨는 여성농업경영인 대표로 옹진군과 KT가 선정하는 협력사업 시범농가가 됐다. KT 지원을 받아 이중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농작물 운반 레일,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원격 제어시스템, 농작물 ICT 환경제어장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및 난방시설을 갖춘 스마트팜을 만들었다. 1000m²의 스마트팜 비닐하우스는 스마트폰으로 딸기의 필수 영양분(양액)과 물을 공급하며 조명을 조절할 수 있다.

을남 씨는 딸기를 소재로 생산, 가공, 직판, 외식, 체험, 숙박을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농촌 융·복합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농수산대의 졸업생 대상 영농정착지원사업에 선정돼 스마트팜 확장 비용을 지원받게 됐다. 을남 씨는 자비를 들여 연꽃마을의 130m² 터에 딸기 가공센터 및 체험장을 짓고 있다. 10월경 완공되면 급속 냉동고 및 저장고, 딸기 버블 세척기, 딸기 분말기, 잼솥, 용기 살균기, 빔프로젝트, 쇼케이스를 갖출 예정이다. 초록빛 영양 덩어리로 알려진 클로렐라(녹조류 단세포생물) 배양시설도 만든다. 이를 통해 병충해에 강하고 부패율도 줄어든 무농약 딸기를 생산한다.

“섬에선 과일이 귀해요. 글로벌농산물우수관리인증(GAP)을 받은 클로렐라 딸기를 군부대와 마트에 공급할 거예요. 체험장에서는 초콜릿, 주스, 타르트, 샌드위치 같은 신선한 딸기 가공품을 1년 내내 먹을 수 있게 될 거고요.” 을남 씨가 빙그레 웃었다.

인천=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딸기#6차산업#벤처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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