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생즙으로 이룬 ‘무릉도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0일 03시 00분


[벤처농부 100만 시대 열자]<7> ‘나만의 기술’로 귀농 성공 연화순-장해영씨 부부

2008년 고향으로 귀농한 연화순(오른쪽) 장해영 씨 부부가 8일 복숭아 밭에서 활짝 웃고 있다. 연 씨는 “농촌에 와서 농사만 
지으려고 하지 말고 귀농 이전에 하던 일을 농업에 접목할 방안을 찾으면 새로운 블루오션이 열린다”고 조언했다. 충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08년 고향으로 귀농한 연화순(오른쪽) 장해영 씨 부부가 8일 복숭아 밭에서 활짝 웃고 있다. 연 씨는 “농촌에 와서 농사만 지으려고 하지 말고 귀농 이전에 하던 일을 농업에 접목할 방안을 찾으면 새로운 블루오션이 열린다”고 조언했다. 충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여보, 우리 귀농할까?”

2008년 5월 연화순 씨(45)는 오랜 고민 끝에 아내 장해영 씨(37)에게 농촌에서 살아보자고 제안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양잠(養蠶)과 곤충을 전공한 뒤 서울의 농업 관련 연구소 수석연구실장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던 때였다. 심리상담사로 일하는 아내 장 씨와 함께하는 서울 생활은 비교적 평안했다. 반대를 예상했지만 아내는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8일 만난 장 씨는 “경북 상주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가 20여 년 전부터 유기농으로 벼를 키우고 있어서인지 남편의 제안이 싫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 아들 생각한 귀농 결심

연 씨가 귀농을 결심한 계기는 지금 중학교 1학년인 아들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집과 유치원, 여러 학원을 왔다 갔다 하는 아들이 힘겨워 보였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더 심해질 걸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들이 자연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히 자라기를 바라고 귀농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연 씨는 곧바로 연구소에 사직서를 내고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귀농지는 연 씨가 중학교까지 산 충북 충주시 엄정면, 그의 고향이었다. 아이를 위한 귀향이었지만 그래도 일은 필요했다. 귀농을 준비하며 생각한 것은 교육용 누에키트(kit) 제조, 판매와 지역 특산물인 복숭아 키우기였다. 연 씨 부부는 충주시농업기술센터를 찾아 복숭아 재배 교육을 받았다. 평생 복숭아를 키운 아버지와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노하우도 전수받았다. 교육용 누에키트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부농(富農)까지는 아니어도 경제적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귀농 이듬해 20년 만에 몰아친 한파(寒波)가 초봄까지 이어지면서 복숭아나무 대부분이 고사해 수확량은 ‘0’이었다. 누에키트도 쇼핑몰에서 비슷한 제품을 팔아 매출을 올리지 못했다.

“당시 연매출이 1500만 원 정도였습니다. 서울에서 맞벌이할 때 수입의 5분의 1도 안 됐습니다.”

귀농하면서 땅을 사고 농기계를 구입하느라 남은 돈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아이의 적금 통장을 깼다. 연 씨는 “통장을 해약하면서 ‘귀농을 너무 쉽게 결정한 게 아닌가’ ‘나 때문에 가족이 힘들구나’ 하는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한 철 생산해 1년을 사는 식의 귀농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내와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복숭아 생즙을 만들기로 했다.

건강원 사업장 허가를 받고 넓이 10m²가 채 안 되는 공간에 추출기를 설치했다. 여러 건강원을 다니며 중탕(重湯)법을 배워 직접 복숭아즙을 우려냈다. 그러나 쓴 한약 같은 맛이 문제였다. 수소문해 보니 천도복숭아가 아닌 복숭아로 생즙을 내는 곳은 없었다.

○ 실패 거듭한 복숭아 생즙 짜기

연 씨는 직접 생즙 짜기에 도전했다. 잘 무르고 씨앗까지 큰 복숭아에서 생즙을 짜내기는 쉽지 않았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3년 가까운 노력 끝에 갓 딴 복숭아의 맛과 향, 영양분을 고스란히 간직한 생즙 생산에 성공했다. 저온살균법으로 저장 기간도 늘렸다. 식품제조가공업 허가를 받고 쇼핑몰을 만들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1년 내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지난해 연 매출액 2억4000만 원을 올릴 정도로 성장했다.

연 씨는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한 기술이라 특허를 낼까도 했지만,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해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허가 자신 같은 귀농인의 경쟁력을 낮출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그는 “나만의 특별한 기술로 승부해야 귀농에서 성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연 씨는 복숭아 생즙 판매와 함께 잠사와 곤충을 주제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149m² 규모의 체험장은 실내를 카페처럼 꾸몄다. 1년 내내 누에 기르기, 오디 수확, 각종 식용곤충 체험을 할 수 있다. 귀농 첫해 1차 산업에서 시작해 거의 10년 만에 6차 농업까지 이뤄낸 셈이다.

주변을 돌보는 데도 앞장선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꾸준히 성금을 기부한다. 귀농인이 제대로 정착하는 데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체험장에는 예비 귀농인의 발길과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연 씨는 “‘그냥 농촌에 내려가서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귀농한다면 100%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생각지도 않은 변수가 많이 있는 만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조건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만 하지 말고 귀농 전에 하던 일과 접목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플러스알파’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충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복숭아#벤처농부#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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