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액팅룸(Reacting Room)’에 들어서자 왼쪽에 놓인 한 설비가 눈길을 잡았다. 검은색 단열재로 둘러싸인 긴 관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각 관에는 노란색, 하늘색, 빨간색 테이프가 붙었다. 두 가지 색이 함께 붙은 관은 두 원료가 합쳐졌음을 뜻한다고 했다. 최종적으로는 세 가지 색이 붙은 관이 장치 밖을 향했다.
이른바 ‘연속반응 공정’ 설비다. 연속반응 공정은 서로 다른 탱크에서 각 원료를 조금씩 흘려주면서 지속적으로 화학반응이 일어나게 한다. 컨베이어벨트 위를 이동하는 차체에 부품을 하나씩 조립해 나가는 자동차 생산 방식과 비슷하다.
9일 SK바이오텍 세종공장을 취재했다. SK바이오텍은 글로벌 제약업체로부터 주문이 밀려들자 기존 대전공장에 이어 16만 L 규모의 세종공장을 새로 지었다. 5월 상업생산을 시작한 이 공장의 내부가 언론에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이 공장의 특징인 연속반응 공정은 원료의약품 위탁생산업체(CMO)인 SK바이오텍의 핵심 기술이다. SK그룹이 과거 유공 시절 개발한 석유화학 생산 기술에서 따왔다. 석유화학 노하우를 제약 사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활용한 셈이다. 이런 노하우가 없는 경쟁 업체들은 원료를 대형 반응기에 넣어 한꺼번에 섞는다. 일정한 온도 유지가 어려운 것이 단점이다.
세종공장 리액팅룸에 설치된 두 개의 모듈 중 모듈1은 전체 3단계 중 하나를 연속반응 공정으로 처리한다. 연속반응 공정은 원료나 촉매를 용매에 넣어 녹일 때 정확한 온도 유지가 필요할 때 유용하다. 반지름이 10cm 이하인 관에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어서 관 내부 온도 조절 장치만으로도 충분히 정확한 온도 유지가 가능하다. 엄무용 SK바이오텍 대전·세종 공장장(상무)은 “일반 공정은 최종 반응물의 7배쯤 원료를 투입해야 한다면 연속반응 공정은 1.5배만 필요하다”고 했다. 원료 투입량이 적으니 폐기물도 자연스럽게 줄일 수 있다.
SK바이오텍은 이 공정을 해외 공장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올 6월 BMS로부터 인수하기로 계약을 맺은 아일랜드 스워즈 원료의약품 공장에 이 공정을 적용할지 검토하고 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글로벌 고객사들이 연속반응 공정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서다. 박준구 SK바이오텍 사장은 지난달부터 아예 아일랜드에 머물며 스워즈 공장 인수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아일랜드에 한국 기업이 생산시설을 갖게 된 첫 사례여서 현지 기대도 크다. 유용채 SK바이오텍 재무팀 수석매니저는 “아직 인수가 완료되기 전인데 스워즈 공장에는 이미 태극기가 걸렸다. 외국 인수기업을 이처럼 환대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SK바이오텍은 세종2공장 설계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2공장은 2019년 1분기(1∼3월) 준공해 2분기(4∼6월) 상업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0년까지는 세종3, 4공장도 세울 계획이다. SK바이오텍 지분 100%를 가진 SK㈜도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간 650억 달러(약 74조4000억 원)에 이르는 글로벌 CMO 전체 시장 가운데 SK바이오텍이 경쟁하고 있는 원료의약품 시장은 440억 달러(약 50조4000억 원) 수준으로 7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 SK㈜ 관계자는 “신약을 개발하는 SK바이오팜과 위탁생산을 하는 SK바이오텍 두 날개로 바이오산업을 SK그룹 내 강력한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워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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