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출이나 사업자대출을 받고 이를 편법으로 주택 구입에 쓰는 관행을 금융당국이 엄격하게 단속하기로 했다. 8·2부동산대책으로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일부 대출자들이 부족한 대출액을 신용대출 등 다른 형태의 대출로 채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데 따른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편법 대출을 유도하는 금융회사에는 직원 징계나 기관 경고 등 중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21일 간부회의에서 “강화된 대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신용대출, 개인사업자대출 등 편법을 부추기는 금융회사는 현장 점검을 통해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진 원장은 “규제 강화로 줄어든 대출 자금을 신용대출로 조달하면 가계대출 증가세가 재연될 수 있다”며 “부동산 임대업을 중심으로 개인사업자대출이 크게 증가하는 것도 이번에 대출 규제가 강화된 게 원인인지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거듭 강력한 단속 의지를 내비쳤다.
○ 담보대출 막자 신용대출로 풍선효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우리 KEB하나 농협 등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6일 현재 93조1171억 원으로 이달 들어 5882억 원 늘었다. 올 상반기 개인사업자 대출액도 20조4000억 원 증가해 전년 같은 기간(15조6000억 원)보다 증가폭이 31% 커졌다. 신용대출이나 사업자대출은 주택담보대출보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향후 경기가 나빠지면 대출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신용대출의 비중이 커질수록 가계부채의 질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관리 규정상 신청 용도에 맞지 않은 대출 승인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원칙은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지금까지 은행권에선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때문에 대출액이 부족해진 고객에게 은행 직원들이 신용대출과 사업자대출을 ‘안내’하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하기 두세 달 전에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주거나 개인사업자에게 운전자금(인건비 등 영업비용 목적), 시설자금(건물, 기계 구입 목적) 등의 명목으로 대출을 유도하는 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사 관계자는 “고객이 대출을 용도에 맞춰 쓸 테니 돈부터 달라고 요구하면 특별한 증거가 없는 한 이를 들어주지 않는 창구 직원은 없다”고 귀띔했다. 신용도에 문제가 없는 고객이 대출을 원하는데 이를 거절했다가는 민원이 발생하거나 다른 은행으로 고객을 뺏길 위험이 있어서다.
○ ‘용도 외 대출’ 적발도 어려워
금융당국의 적발이 어렵다는 점도 편법 대출을 부추기는 요소다.
원칙적으로 금융당국은 은행업 감독규정 등에 따라 대출 용도를 어긴 고객과 금융회사를 모두 징계할 수 있다. 가령 직원 월급을 주겠다며 운전자금을 받아간 고객이 이를 용도와 달리 주택 구입에 썼다면 해당 금융사를 통해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다. 대출을 내준 금융사나 직원도 징계 대상이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
개인 신용대출은 입출금 내용이 복잡해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하다. 사업자대출은 대출 3개월 안에 용도에 맞게 사용했다는 영수증을 제출해야 하지만 차주가 가짜로 영수증을 만들어 낼 경우 진위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돈을 빌리기 직전에 사업자등록을 한 차주 등을 샘플 조사하는 방법으로 단속해 최대한 풍선효과를 막겠다”며 “창구 직원과 대출모집인 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교육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