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경남 창녕군 대지면 창산리. 처서(處暑)를 일주일 앞둔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렀다. 근처에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우포늪과 양파 재배지가 있다. 그리고 넓은 들판 가운데 천년초 농장이 있다. 농장 이름은 ‘자꾸커’. ‘작물과 농장이 자꾸 성장한다’란 의미다. 농장에는 처녀 농군 2명이 있다. 사촌 자매인 오우진 씨(43)와 오주현 씨(36)다. 두 사람에게 “시골 생활에 불편함은 없느냐”고 물었다.
“저는 부족한 거 없어요, 주현이 넌?” “불만 제로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우진 씨는 털털하고 외향적인 성격, 주현 씨는 차분하고 조용한 편이다. 상반된 성격이지만 오히려 적절한 역할 분담으로 조화를 이룬다. 스스로 만족하며 행복을 극대화하는 ‘행복 귀촌’의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들은 초중고교를 대구에서 나오고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두 사람은 왜 농촌으로 눈을 돌렸을까. 첫 번째는 주현 씨의 건강이 원인이었다. 어릴 때부터 머리에 열이 자주 나고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병원도 들락거렸지만 원인 불명. 백약이 무효였다. 궁여지책으로 굿까지 벌였으나 허사였다.
2007년 주현 씨는 우연히 천연초 가공식품을 먹었다.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충남 아산의 천년초 재배 농가를 둘러본 주현 씨는 “이거다”란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언니 우진 씨에게 “촌에 가서 살자”며 꼬드겼다. 우진 씨는 처음엔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친자매 이상이었던 주현 씨의 달콤한 제안에다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우진 씨는 결국 ‘OK’를 선언했다.
“그래 사람답게, 사람다운 삶을 살아보자.”
처음에는 주현 씨의 외가인 창녕군 유어면 진창리에 자리를 잡았다. 놀고 있던 밭을 다듬고 천년초를 심었다. 음식을 손수 만들어 먹고 이웃의 양파 수확을 도왔다. 품삯이 생활비였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풀 매기였다. 예취기로 제거하고 일일이 손으로 뜯어냈다. 우진 씨는 “재래식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천년초 모종과 생줄기가 제법 많이 팔렸다”며 “자연농법이나 태평농업을 넘어 말 그대로 ‘방치농법’이었다”고 말했다.
천년초 재배는 크게 어려움이 없단다. 작물 스스로 잘 자라는 덕분이다. 다만 가시가 많아 다루기 힘든 것이 흠이었다. 일하다 몸에 가시가 박히기 일쑤였다. 아프기도 하지만 박힌 가시를 빼내기도 쉽지 않았다. 눈물도 한없이 흘렸다. 그러나 이젠 추억이 됐다.
진창리 농장(약 3400m²)과 함께 3년 전 창산리에 집과 사무실을 갖춘 자꾸커 농장을 새로 일궜다. 그리고 ‘천년초 농사짓는 시골아가씨’라는 블로그(piety1001.blog.me)를 운영하고 있다. 일상생활과 친환경 영농일기 등을 올린다. 지역 내 귀농·귀촌 젊은이와 함께 ‘청춘 파머(farmer)’라는 커뮤니티도 만들었다. 각종 정보와 생산품 판로를 공유한다. 농사일이 끝나면 자매는 대구로 나가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한다. 저녁엔 책 읽고 악기를 연주하며 여유를 찾는다.
자꾸커 농장은 천년초 줄기와 모종, 열매도 판매하지만 천년초 즙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창녕군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아 구입한 추출기와 포장기를 이용해 저온추출법으로 만든다. 첨가물은 쓰지 않는다. 즙을 미리 만들어 뒀다 판매하는 농가도 있지만 자꾸커 농장은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은 뒤에야 만들어 보낸다. 그만큼 신선하다. 천년초 즙은 관절염과 고지혈증, 당뇨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의 연간 수입은 5000만 원 안팎. 주변에선 “이제 돈을 더 벌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주현 씨는 “규모를 키울 수도 있지만 5억, 50억 원보다 더 가치가 있는 건강을 잘 유지하고, 생활 자체도 만족스러워 현재로선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한다. 제품 포장엔 ‘이익을 위해 양심을 팔진 않겠습니다’란 다짐이 새겨져 있다. 최근 경쟁 농가가 늘어나고 일부에서 저가(低價) 공세를 펴기도 한다. 자매는 한국국제대 식품의약학과 정영철 교수 등의 지도를 받아 천년초 즙의 성분과 맛을 끌어올리고 포장재 디자인 개선도 검토하고 있다. 소비자를 위한 변화의 시도다.
귀농과 귀촌에 대한 ‘팁’을 묻자 “이웃과 잘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 어른들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주고 주민들의 벗으로 자리하면서 기쁨이 두 배가 됐다는 설명이다. “언제까지 농사를 지을 것이냐”란 질문에 “숨 막히는 도시 생활은 싫다. 결혼을 하더라도 몸과 마음이 행복한 시골에 있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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