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채용 부정청탁 통로 될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일 03시 00분


국책연구기관인 조세硏 지적
“공공기관 담당자 전문성 갖춰야”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공공기관들이 출신 학교, 영어 점수 등 이른바 ‘스펙’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 제도가 자칫 부정한 채용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지적이 나왔다. 취지가 좋다고 무조건 밀어붙일 게 아니라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하고 보다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31일 내놓은 보고서 ‘공공기관 채용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고’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비수도권과 지역 인재 채용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단순한 기대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입사 지원자가 입사원서에 사진, 출신 지역, 학력, 가족관계 등을 적지 못하게 한 뒤 채용담당자들이 직무능력만으로 인재를 뽑는 형태의 채용 방식이다. 공정한 채용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주요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의 가장 큰 문제로는 부정 채용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꼽혔다. 조세연구원은 “공공기관들이 블라인드 채용을 제대로 시행할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순환보직으로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의 채용으로는 블라인드 채용의 본질적인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인적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이뤄지면 이제까지 채용의 객관적 근거로 쓰였던 각종 스펙을 확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사적인 관계에 의존하거나 청탁에 의한 선발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블라인드 채용이 오히려 필기시험 성적 결과대로만 인재를 뽑는 ‘줄 세우기 선발’로 변질될 수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스펙을 보지 않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려면 공공기관들로서는 필기점수 결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다. 박한준 조세연 연구위원은 “단지 입직 단계에서 사회형평적인 채용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제도가 지속될 수 없다”며 “시혜적인 채용이 아닌 합리적인 채용과 인력 관리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블라인드#채용#부정청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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