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김 부총리는 이날 “통상임금의 법적 범위를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며 “근로기준법을
조속히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노조 승소로 막을 내린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1심 판결의 파장이 커지면서 통상임금 법제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통상임금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해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자는 취지다. 현행 근로기준법엔 통상임금 규정이 전혀 없다.
그러나 통상임금 범위를 둘러싼 여야와 노사 간 의견 차가 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경영계는 2013년 대법원 판례와 2015년 노사정 합의대로 통상임금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계는 그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이번 정기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 ‘고정성’이 핵심 쟁점
현재 국회에 제출된 통상임금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안과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안 등 두 가지다. 김 의원 개정안은 2013년 12월 “1개월을 초과해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이라도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이 있다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반영했다. 상여금을 1년에 한 번만 지급하더라도 매년(정기성), 모든 근로자에게(일률성), 사전에 주기로 약속했다면(고정성)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2015년 9월 15일 체결된 노사정 대타협 합의문에도 명시돼 있다.
또 김 의원 개정안은 정부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임금을 시행령에 자세히 담도록 하고 있다. 이 안대로 법안이 통과되면 경영성과급이나 명절상여금 등은 ‘고정성’이 없기 때문에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김 의원 안은 대법원 판례와 노사정 합의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원내 1당이 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 이 의원은 올해 2월 김 의원 개정안보다 통상임금의 범위를 더 넓힌 새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노동계의 요구를 대폭 반영한 것이다. 이 의원 개정안은 고정성을 제외한 일률성과 정기성 등 두 가지만 통상임금 요건으로 두고 있는 게 특징이다. 경영성과급처럼 노사가 사전에 정하지 않은 상여금이라도 관행적, 정기적으로 지급했다면 사실상 정기상여금으로 봐야 한다는 판례를 중시한 개정안이다. 이렇게 되면 경영성과급이나 명절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근로자의 수당과 퇴직금 등이 더 오르게 된다.
○ 샌드위치 정부, 해법 찾을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정기국회에서 두 의원 개정안을 두고 함께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근로시간 단축 등 국정과제 입법에 집중하기로 해 의견 차가 큰 통상임금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일단 정부는 통상임금 법제화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통상임금과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조속히 개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도 통상임금과 관련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게 문제다. 고용노동부는 지금까지 대법원 판례를 근로기준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사실상 김 의원 개정안에 무게를 실은 셈이다. 그러나 여당 소속인 이 의원이 개정안을 새로 낸 데다 노동계 친화적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만큼 고용부도 김 의원 개정안을 지지하기 힘든 처지다.
만약 여당이 이 의원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밀어붙인다면 고용부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국회와 거의 논의하지 못해 현 상황에서 정부 입장을 명확히 밝힐 수 없다”며 “여야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입법 방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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