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를 2년 6개월 만에 부활시킨 것은 과도한 분양가가 촉발하는 주택 시장의 불안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고(高)분양가가 주변 집값을 끌어올리고 분양가가 또다시 높아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뜻이다.
규제 사정권에 들어간 서울 강남권 등 투기과열지구 가운데 이르면 다음 달 말 상한제 적용 지역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조치로 분양가가 떨어지면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겐 내 집 마련의 기회가 될 수 있겠지만 주택 공급 위축이나 ‘로또 청약’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 2년 6개월 만에 부활한 분양가 상한제
분양가 상한제는 신규 아파트의 분양가를 땅값(택지비)과 건축비를 더한 기준금액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공공택지에 처음 도입된 뒤 2007년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택지 아파트로 전면 확대됐다. 이후 주택 경기 침체로 차츰 적용 대상이 줄다가 2015년 4월 민간택지에 대한 적용 기준이 대폭 강화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제도는 남아 있지만 2년 6개월간 실제 적용된 사례는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5일 발표한 ‘8·2부동산대책 후속 조치’를 통해 상한제가 시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적용 기준을 대폭 낮췄다.
앞으로 최근 3개월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한 곳 가운데 ①1년 평균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한 곳 ②분양이 있었던 직전 2개월 간 청약경쟁률이 일반주택은 5 대 1, 국민주택규모(85m²) 이하는 10 대 1을 초과한 곳 ③3개월 주택 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한 곳 가운데 한 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으로 선정된다. 관련 내용을 담은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은 8일 입법예고를 거쳐 다음 달 말 시행될 예정이다.
○ 서울 강남권 등 12개 구 ‘사정권’
변경된 기준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최근 3개월 집값 상승률이 소비자물가상승률(0.7%)의 2배인 1.4%를 초과한 곳이면 상한제 적용 대상의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한다. 부동산114가 한국감정원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서울 강남(2.39%) 노원(2.43%) 송파(2.02%) 강동(2.18%) 등 현재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11개 구와 동작구(1.71%) 등 12개 구가 해당됐다. 세종(2.95%)과 경기 성남(2.33%) 광명(1.51%) 김포(1.45%) 고양(1.81%) 대구 수성구(1.58%) 등도 첫째 요건을 갖췄다.
분양가 상승률과 청약경쟁률 요건 등을 감안하면 이 중 서울 강남권과 마포·용산·성동구 등 도심권 일부, 지방에서는 대구 수성구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박선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이 같은 정량적 요건과 함께, 주거정책심의를 거쳐 분양가가 주변 집값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선별해서 지정할 것”이라며 “실제 적용 대상 지역은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무주택자 기회냐 vs 공급 위축 우려냐
상한제 도입에 대한 전문가 평가는 엇갈린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분양가 상한제 도입으로 실수요자들은 혜택을 볼 것”이라며 “자금이 마련된 실수요자들은 강남에 진입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건설사들이 규제가 완화될 때까지 분양을 늦추면서 2, 3년 뒤 주택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겹겹 규제에 둘러싸인 재건축 단지들은 분양가 상한제까지 적용되면 수익성이 떨어져 사업 추진이 중단될 수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강남·서초·송파·강동 등 강남 4구의 재건축 추진 아파트 가운데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지 않아 상한제 대상이 될 수 있는 단지는 70여 곳, 6만1585채다.
분양가가 시세보다 떨어지면 오히려 시세 차익을 기대한 ‘로또 청약’ 수요가 몰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청약을 앞둔 서초구 ‘신반포 센트럴자이’는 상한제가 적용되진 않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3.3m²당 1000만∼2000만 원 낮은 수준으로 제한하면서 시세 차익을 노린 수요자가 대거 몰려들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