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7시 잠에서 깬 정소이 씨(21·사진)는 가장 먼저 ‘채소도감’부터 폈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일상이다. 정 씨의 채소도감엔 가지처럼 비교적 대중적인 채소부터 으름덩굴 같은 생소한 채소들까지 이름, 재배방법, 보관법, 조리방법 등이 자세히 정리돼 있다. 정 씨는 2년 전쯤 ‘채소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다. 그러고는 자신만의 채소도감을 만들었다.
채소 소믈리에는 대중에게 다양한 채소의 종류와 그에 맞는 조리법 등을 소개하는 직업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4만 명이 넘는 채소 소믈리에가 활동하고 있다. 국내는 아직 500여 명뿐이다. 채소 소믈리에 자격증은 사단법인 한국채소소믈리에협회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발급받을 수 있다.
정 씨가 채소 소믈리에라는 생소한 직업을 선택한 것에는 4년 전 부모님의 귀촌 영향이 컸다. 정 씨 부모님은 대구의 한 시골마을로 귀촌한 뒤 800평의 텃밭을 가꿨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정 씨는 텃밭에서 다양한 채소를 직접 재배하고 수확하면서 채소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채소를 맛있게 먹는 사람은 드물어요. 또 보관법과 조리법을 몰라 구매한 뒤 버리는 채소 양이 엄청나죠. 다른 사람들에게도 채소의 가치와 유용한 조리법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정 씨는 페이스북에서 개인 계정과 별도로 한국소믈리에협회와 관련된 또 하나의 계정을 마련해 ‘채소 소믈리에의 365일 제철 채소 달력’을 연재하고 있다. 매일 아침 자신이 만든 채소도감에서 하나의 채소를 선정한 뒤 페이스북에 영양소와 조리법을 소개하는 코너다. 이 계정의 팔로어(페이스북 구독자)는 100명 정도지만 콘텐츠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4일의 주인공은 ‘땅콩’과 ‘상추’였다. 정 씨는 “흔히 상추는 쌈 채소로만, 땅콩은 볶음반찬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상춧국, 땅콩죽, 땅콩퓌레 등 다양한 조리방법이 있다”고 했다. 정 씨가 글을 올리자 “부모님께 땅콩죽을 해드리면 좋겠다” “사놓고 버리기 일쑤였는데 도움이 됐다”는 댓글이 곧바로 달렸다.
20대 초반이지만 채소 소믈리에로서의 역할을 말할 때는 당찼다. 사람들의 채소 섭취량을 늘리는 게 채소 소믈리에로서의 의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씨는 “서양에 비해 채소 섭취가 적은 한국에서 채소 소믈리에는 특히 중요하다. 1인 가구와 홀몸노인 가구가 늘어날수록 채소 소믈리에를 찾는 곳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정 씨는 아동보호기관에서 자원봉사도 한다. 주로 육류 반찬만 찾는 아이들이 채소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도록 돕는 일이다. 정 씨는 “동화 구연을 하듯 채소를 설명한다. 손도 대지 않던 채소를 만져보려고 하고 즉석에서 만든 채소 반찬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틈틈이 병원도 찾고 있다. 식이요법에 관심이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정 씨는 “채소의 특성과 환자의 체질을 모르고 먹어 탈이 나는 경우가 있다. 삶의 활력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채소의 올바른 섭취 방법을 소개할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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