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로봇 시대의 삽질 대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8일 03시 00분


유재동 경제부 차장
유재동 경제부 차장
세계적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1960년대 한 개발도상국의 정책 컨설팅을 위해 운하(運河) 공사 현장을 찾았다. 그런데 공사장에선 이렇다 할 중장비 하나 없이 인부들이 모여 힘들게 삽질만 하고 있었다. 옆의 공무원에게 이유를 묻자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그랬다”는 답이 돌아왔다. 프리드먼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다. “그럴 거면 왜 삽을 줬소. 숟가락을 주면 더 좋았을 걸.”

최근 정부의 공공 부문 채용 확대 계획을 보며 이 얘기를 떠올린 사람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 서문에 나오는 일화다. 실제 정부가 요즘 일을 너무 쉽게 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일자리가 부족하면 공공기관들에 많이 뽑으라 하고, 비정규직이 불쌍하면 싹 다 정규직으로 만들어준다. 청와대의 일자리 상황판 숫자만 늘릴 수 있다면 정말 청년실업자에게 삽자루든 숟가락이든 나눠주고 땅을 파게 할지 모른다는 걱정도 든다. 너무 무리한 상상일까.

앞으로 고용은 정부가 아무리 쥐어짜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를 잠식하는 요인은 많지만 가장 결정적인 게 로봇의 등장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스타트업은 햄버거를 1시간에 360개나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내놨다. 이 회사 사장은 “이 로봇은 종업원을 돕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 종업원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단언했다. 로봇은 단순반복 업무만 담당할 테니 내 일자리는 괜찮다는 건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소리다. 요즘 로봇은 손수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고, 교수를 대신해 에세이 채점도 한다. 노동의 질은? 다들 인간의 작품이라 속았을 정도였다.

카카오뱅크는 출범 한 달 만에 300만 계좌를 돌파했다. 직원 수가 7만 명을 헤아리는 전체 시중은행의 20년 실적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런 카뱅의 직원이 고작 300명이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13일 채용박람회에서 “인터넷은행 두 곳이 벌써 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신기술이 일자리의 보고(寶庫)인 양 치켜세웠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금융권 일자리는 매년 2만 개씩 사라지고 있다. 신기술은 일자리의 원천이라기보다는 킬러에 훨씬 가깝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이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13일 채용박람회에서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염치없고 시대흐름에 안 맞는 건 알지만… 그래도 몇 조 영업이익 내시니 금융사들이 채용을 늘려 달라. 그 후는 정부가 책임질 테니.”

모순된 지시는 상사의 특권이라 했던가. 일자리위 홈페이지에는 위원장(대통령)의 다짐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일자리는 늘리고, 고용의 질은 높이겠다.’ 마치 ‘증세 없는 복지’급의 난제를 풀기 위해 정부는 공공 일자리 확대, 최저임금 인상이란 액션플랜을 내걸었다. ‘소득-소비-생산-고용’이 차례로 증가하는 선순환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이클은 기대와 달리 역류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근로자의 생산성은 로봇에 밀린다. 생산성을 높이지 않은 채 임금만 올린다면 노동시장의 진입 장벽만 높여 고용의 빙하기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의 고용정책이 현재 상황을 고집한다면 로봇과의 ‘일자리 전쟁’은 인간의 완패(完敗)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누굴 때려잡아 없는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 때가 아니다. 로봇시대에 대비해 고용정책의 패러다임을 모두 재점검해야 한다. ‘숟가락으로 땅파기’식 해법만 고집한다면 머잖은 시기에 로봇 뒤에서 손가락만 빨게 될 수도 있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로봇#고용#정책#정부#카카오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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