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꼼’ 내세워 이미지 변신… 동네시장서 사람 끄는 명소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4일 03시 00분


[관광문화 명소로 진화하는 정통시장]<1> 부천 역곡상상시장

‘만화의 도시’ 부천에 있는 역곡상상시장은 백곰을 캐릭터화한 ‘빼꼼’(위쪽 사진)을 시장 출입구에 조형물로 설치했다. 이 시장은 각종 문화공연(아래쪽 사진)도 열며 지역의 문화관광 공간 역할도 하고 있다. 부천 역곡상상시장 제공
‘만화의 도시’ 부천에 있는 역곡상상시장은 백곰을 캐릭터화한 ‘빼꼼’(위쪽 사진)을 시장 출입구에 조형물로 설치했다. 이 시장은 각종 문화공연(아래쪽 사진)도 열며 지역의 문화관광 공간 역할도 하고 있다. 부천 역곡상상시장 제공
18일 오후 경기 부천시의 역곡상상시장. 비가 간간이 내리는 평일 오후였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장을 보고 있었다. 간혹 카메라를 든 외국인들이 신기한 눈으로 시장을 둘러보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곳은 아케이드를 설치한 덕분에 눈이나 비를 맞지 않아도 된다. 고객이 걸어 다니는 골목의 폭은 4m에 이른다. 대형마트에서나 볼 수 있는 카트는 물론 한 손에는 아이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미는 주부도 눈에 띄었다.

남일우 역곡상상시장 상인회 회장은 “전통시장이 어렵다지만 우리 시장은 평일에도 고객이 몰린다”면서 “매년 명절마다 매출이 10%씩 늘다보니 상인들이 활기가 넘친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지하철 1호선 역곡역 주변의 상권 경쟁은 치열하다. 역곡역 주변으로 남쪽에는 역곡남부시장이, 북쪽에는 역곡북부시장(현 역곡상상시장)이 1980년대 초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가운데는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있다. 고객층도 다양하다. 기존에 거주하던 중장년층부터 서울에서 이사 온 젊은 부부와 아이들까지 시장에 온다. 주변에는 가톨릭대를 포함해 유한대 성공회대 부천대가 있다. 인근 온수공단의 젊은 근로자들까지 역곡역으로 모여든다. 최적의 상권인 셈이다.

상권의 승자는 역곡북부시장이었다. 이곳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동네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골목형 시장이었다. 아케이드가 생기고 깨끗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게 된 계기는 2014년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사업은 지역 고유의 관광 및 문화, 특산품을 연계해 전통시장을 육성하자는 취지다. 3년간 최대 18억 원 이내에서 시장에 따라 차등 지원된다.

2015년 9월 시장 명칭도 역곡상상시장으로 바꿨다. 상상시장은 상인들이 서로 돕는다는 상부상조(相扶相助)의 뜻과 ‘상상 이상의 시장을 만들어 보자’라는 의지가 함께 담겨 있다.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된 역곡상상시장은 부천이 만화작가 300여 명이 거주해 ‘만화의 도시’라 불리는 점을 적극 활용했다. 백곰을 캐릭터화한 ‘빼꼼’을 시장의 대표 캐릭터로 선정했다. 시장 내 주·보조 출입구에 바나나와 사과를 든 빼꼼의 조형물도 설치했다. 시장 아케이드 천장에는 스크린을 설치해 만화 등 영상물을 상영했다.

남 회장은 “빼꼼 보러 시장에 가자고 엄마를 조르는 아이가 있을 정도”라며 “만화 캐릭터 사업이 아이들에게 전통시장을 훨씬 친근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역곡상상시장이 유명해지면서 인근 춘덕산의 등산객이 산에서 내려와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일도 많아졌다. 부천국제영화제 때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시장 바닥에 앉아 이른바 ‘치맥파티’를 열기도 했다.

시장을 지역커뮤니티로 조성하는 전략 역시 성공의 배경이다. 시장 중간에 있는 상인회 건물 1층 앞쪽에는 노상카페가 조성됐다. 점심때면 사람이 꽉 들어차 붐빈다. 역곡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데다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1000원이다. 시장에 별 볼일이 없는 지역민들까지 이곳을 약속 장소로 삼는다. 2층 문화교실에서는 기타 배우기부터 요가, 노래 교실, 반찬 만들기 교실 등 다양한 강좌가 지역민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카페 옆에서 지역 만화가들이 캐리커처를 그려주는가 하면 장난감 대여점도 운영 중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장을 찾는 지역민들은 잠재적 고객이 된다.

인근 대학생을 위한 창업공간도 조성했다. ‘창가게’라는 이름의 작은 점포에서는 방학이면 대학생들이, 평소에는 주부들이 직접 만든 초콜릿이나 향수와 같은 수공예 제품을 판매한다. 5월부터 직접 만든 천연비누를 팔고 있는 주부 민덕애 씨는 “시간이 날 때 잠깐씩이라도 물건을 팔 수 있어서 주부들이 활용하기에 좋은 공간”이라고 했다.

인기 있는 ‘성백영 민속떡’은 지난 추석 연휴 직전 사흘간 쌀 50가마를 쓸 정도로 매출이 급증했다. 2004년 이 시장에 자리를 잡을 때 부부가 일하던 이 매장은 지금 4명을 추가로 고용해도 일손이 부족하다. 성백영 사장은 “추석 때는 아들 친구 6명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해 떡을 만들었다. 매출이 전년 추석보다 2000만 원이 늘었다”며 싱글벙글했다.

역곡상상시장의 성공은 정부 지원만의 결과는 아니다. 122개 점포가 100% 상인회에 가입한 이곳 상인들의 노력과 협력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남 회장은 “시장개선사업 초기에 고객 동선을 넓히자고 제안하니까 일부 상인은 ‘고객이 발로 걷어차야 물건이 나간다”며 반발했지만 이제는 모두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천 역곡상상시장은 전통시장의 성공모델로 자리 잡고 있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장보기 대행 서비스 같은 사업은 정부 지원이 끊기면 지속하기 쉽지 않다.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포인트 적립이나 신용카드 사용 역시 제한적이다. 역곡상상시장의 한 상인은 “시장이 입소문이 나면서 임차료가 급등해 작은 점포 월세가 150만∼200만 원 수준이다. 권리금도 1억 원을 육박해 매출이 오르는 만큼 상인들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상인도 주민도 “우리시장 마지막 소원은 주차장” ▼

주차공간 20대 빌려 임시 운영, 하루 방문객 5000명… 턱없이 부족
“정부-지자체가 직접 해결 나서야”

고객은 경기 부천시 역곡상상시장 입구에 설치된 터치스크린에서 필요한 상품과 매장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부천=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고객은 경기 부천시 역곡상상시장 입구에 설치된 터치스크린에서 필요한 상품과 매장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부천=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이제 마지막 소원은 주차장을 짓는 겁니다.”

18일 경기 부천시 역곡상상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한결같이 주차장 건립을 간절히 호소했다. 인근 대형마트에 가던 소비자까지 전통시장으로 끌어올 정도로 경쟁력을 갖췄지만 주차 문제는 좀처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현재 이곳은 인근 거주자우선 주차장을 임시로 빌려 쓰고 있다. 상인회는 회비를 1만 원씩 올려 주차장 관리 직원도 채용했다. 하지만 주차장에는 최대 20대까지만 차를 댈 수 있을 뿐이다. 시장에 하루 5000여 명이 몰리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시장을 찾는 주민들로부터 “역곡상상시장은 주차장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불평이 쏟아지자 지난달부터 주차장 건립을 위한 서명도 받고 있다. 현재 4000여 명이 서명했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부와 지방자치단체가 6 대 4 매칭 사업으로 진행하는 ‘전통시장 주차환경 개선사업’의 예산을 받기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다. 상인회가 인근 주차장 땅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서 행정절차를 밟아 정부에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도심에서 땅을 구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남일우 상인회 회장은 “실제 거래가격의 80%밖에 안 되는 감정가로 땅을 사겠다고 토지 주인을 설득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차장 건립사업에 필요한 땅을 감정가격으로 사들이도록 규정한 탓이다.

역곡상상시장은 과거에 땅 주인을 설득해 중기부와 부천시로부터 주차장 건립을 위한 예산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예산 집행 절차가 1년 가까이 걸리면서 땅 주인이 마음을 바꿨다. 그 사이에 돈을 더 주겠다는 구매자가 나타난 탓이다. 토지가 초과 공급 상태인 지방이 아닌 이상 도심에서 상인들이 직접 땅을 구해야 사업 예산을 받을 수 있는 현행 절차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남 회장은 “전통시장 육성 의지가 있는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땅을 수용해 지역민과 상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주차공간을 확보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통시장 주차장 문제는 역곡상상시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차장 자체가 없어 불편한 곳도 많지만 시장과 떨어진 곳에 공영 주차장을 설립해도 고객들이 시장 가까이에만 주차하려는 문제 때문에 유명무실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부천=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정통시장#부천#역곡상상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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