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는 기후변화 피해를 가장 많이 본 나라 중 하나다. 기후가 바뀌면서 사이클론이 잦아졌다. 사이클론이 지나갈 때마다 해안선이 밀려왔다. 마을 우물이 있던 자리가 어느새 파도치는 해변이 됐다. 해수면이 높아져 많은 지역이 바다에 잠겼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가난한 사람에게 가혹했다. 해안 가까운 논밭에 소금기가 끼었다.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했다. 땅을 소유한 부자는 논밭을 새우 양식장으로 바꿨다. 양식장은 농사만큼 일손이 필요치 않았다. 자본 없이 노동력을 팔아 살던 사람들은 대책 없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에선 값싼 노동력이 늘어난 기회를 틈타 벽돌 공장이 성행했다. 갈 곳 잃은 가족들은 벽돌 공장 근처 빈민촌에 자리를 잡았다. 일곱 여덟 살짜리 아이들까지 일해야 온 가족이 겨우 하루를 먹고살았다. 처음엔 지구 온도가 오르는 이유가 화석연료 때문인지, 그냥 자연현상인지가 기후변화에 대한 논쟁거리였다. 그러나 원인을 밝히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이야말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그래서 ‘적응(adaptation)’은 기후변화 대책의 핵심 화두가 됐다.
4차 산업혁명이 만들 일자리 변화를 보는 시각도 비슷하다. 일자리 환경 변화는 많은 사람에게 가혹할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미국인이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을 때, 지구 반대편 인도에서 전화를 받는 세상을 그렸다. 앞으로 온라인 고객센터에 채팅으로 문의했을 때 대답하는 상대방은 인도인이 아니라 ‘채팅 로봇’일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에게 빼앗긴 일자리는 이민제한으로 되찾을 수 있겠지만 기술혁신으로 사라진 일자리를 되돌릴 방법은 마땅치 않다. 몇 년 전부터 각광을 받은 ‘공유경제’는 미국 우버(Uber)에 수십조 원의 기업가치를 안겼지만 우버 기사와 같은 노동자들에겐 ‘임시직 경제’를 선물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없어질 일자리보다 생겨날 일자리가 많을 거라는 데 동의한다. 1, 2, 3차 혁명 때도 그랬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콜센터가 문을 닫는데 채팅로봇 운영 회사가 사람을 왕창 뽑는다한들 무슨 상관인가. 내가 일할 수 없는데…. 일자리 통계에선 낭보(朗報)지만, 당장의 내 삶에선 비보(悲報)다.
시선을 다시 방글라데시로 돌려보자. 기후변화 난민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에 더러운 빈민촌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나라 구석구석에 과격한 성향의 종교단체가 독버섯처럼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적응 실패는 사회 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진다. 정부 공공기관은 물론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일자리 만들기에 노력해야 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5년 전부터 시작한 일자리 박람회 ‘리스타트 잡페어’는 민간 기업과 정부·공공기관이 노력해 만든 ‘완충 일자리’를 소개해 왔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떠난 여성이 자연스럽게 복귀하도록 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쏟아져 나오는 베이비부머 은퇴자를 위한 중장년 일자리와 실버 채용이 일자리 절벽에 선 사람들의 안전판이 됐다.
올해 전시회엔 SK,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이 새로 추가됐다. 대기업 성장이 일자리 창출과 쉽게 이어지지 않는 시대다. 사회적 기업은 생산성 확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자리 창출 해법이자,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31일부터 이틀간 리스타트 잡페어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광장을 방문하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여성, 중장년, 청년의 취업 기회다. 두 번째는 일자리 환경 변화를 앞두고 어떻게 함께 힘을 모아야 할지 ‘일자리 변화 적응’에 대한 영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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