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쌍용 등 11곳 그룹해체… 한라-한솔 등 8곳 30위 밖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4일 03시 00분


[토요판 커버스토리]외환위기 20년, 국내 30대 그룹 순위 어떻게 달라졌나
대기업 그룹 63%가 해체-탈락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경제적 충격만이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 충격이 국민의 삶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년 전인 1997년 외환위기 사태를 이같이 평가했다. 하지만 1997년에 ‘삶 전체가 뒤흔들리는’ 경험을 한 것은 개인과 국가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기업에 큰 타격을 줬다. 한국의 기업은 외환위기 때 살아남은 기업과 당시에 무너진 기업으로 갈릴 정도로 산업 생태계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3일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한국의 30대 그룹 가운데 19곳이 2017년 현재 해체되거나 3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으로 집계됐다. 대기업 그룹의 63%가 20년이 지난 현재, 당시 재계 순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당시 대기업 가운데 해체된 곳은 대우(1998년 당시 3위), 쌍용(7위), 동아(10위), 고합(17위), 진로(22위), 동양(23위), 해태(24위), 신호(25위), 뉴코아(27위), 거평(28위), 새한(30위) 등 11곳에 이른다.

현대, 삼성에 이어 재계 3위였던 대우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으로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해체됐다. 대우그룹 모회사인 ㈜대우는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건설로 나뉘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된 뒤 지난해 ‘포스코대우’로 사명을 바꿨다. 대우건설은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편입됐다가 금호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2010년에 KDB산업은행이 인수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시멘트, 건설, 리조트, 자동차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쌍용그룹 역시 해체 이후 계열사별 각자도생을 해야 했다.

한라(12위), 한솔(15위), 코오롱(18위), 동국제강(19위), 동부(20위), 아남(21위), 대상(26위), 삼표(29위) 등 8곳은 외환위기 이후 30대 기업에서 탈락하면서 현재 재계 순위가 20년 전보다 뒤로 처지게 됐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그룹들은 오히려 순위가 올랐다. 삼성은 현대그룹의 해체 이후 재계 서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SK(5위→3위), 롯데(1998년 11위→2017년 5위), 두산(14위→13위) 등도 20년 전보다 재계 순위가 올라선 대표적인 그룹으로 꼽힌다.

최근 20년 새 새로 30대 그룹 반열에 올라선 곳은 기존 대기업에서 분리된 회사가 많았다. 2017년 현재 삼성에서 갈라진 신세계(11위) CJ(15위), 현대에서 분할된 현대자동차(2위) 현대중공업(9위) 현대백화점(23위), LG가(家)의 일원이었던 GS(7위) LS(17위) 등이 새로 30대 그룹에 포함됐다.

외환위기에서 버티거나 새로 30대 그룹에 포함된 기업이라고 해서 별다른 고통 없이 외환위기의 수혜만 입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당시 IMF의 요구에 맞춰 대기업 구조조정에 나섰다.

금융 당국은 1998년 2월 내놓은 5대 핵심과제에 맞춰 △경영 투명성 제고 △상호 채무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핵심 부문 설정 △책임경영 강화 등을 국내 대기업에 요구했다.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부실기업 정리와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2000년대 초까지 계속된 정부 주도의 대기업 빅딜과 인수합병(M&A), 기업 퇴출은 오늘날 한국 기업 생태계의 밑바탕이 됐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성장기업의 진입이 드물어지고, 기존 대기업에 경제력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생겼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한국 경제는 아직까지도 외환위기 이후 설정된 ‘수출 제조업 위주의 대기업’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정권 및 여야를 떠나 4차 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세종=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외환위기#imf#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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