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금융지주사와 시중은행이 잇달아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받으며 금융권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혜채용과 비자금 조성 등의 의혹으로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수사선상에 오르자 전 정부에서 임명된 금융권 인사를 대거 물갈이하기 위한 정지(整地) 작업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3월 BNK금융지주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금융감독원을 포함해 6곳의 금융회사가 검경의 수사를 받았다. 올 4월 검찰은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자사주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박인규 DGB금융 회장 역시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혐의로 입건돼 두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9월부턴 채용비리와 연루된 금융사들이 대거 수사 대상에 올랐다. 감사원 감사 결과 신입직원 선발 과정에서 특혜채용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금감원이 9월 말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금감원에 청탁 전화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10월 압수수색했다.
11월 들어서도 사정한파는 이어졌다. 3일 경찰은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했다. 9월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연임 찬반을 묻는 노조 설문에 사측이 개입했다며 노조가 고소했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9월 KB금융 확대지배구조위원회에서 차기 회장 후보자로 선정됐지만 이달 20일로 예정된 임시주주총회를 거쳐야 최종 연임이 확정된다. 만약 주총 이전에 설문 조작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연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나금융그룹 역시 노사 갈등이 심화되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나금융 노조는 최순실 씨와 친분이 있는 인사를 본부장으로 승진시키는 특혜를 줬다는 이유로 경영진 퇴임을 요구하고 있다. 2일 하나금융 계열사 노조가 공식적으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3연임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긴장감이 더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최근 금융 당국이 진행 중인 채용비리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사정 한파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14개 은행에 이달 말까지 채용추천제도를 집중 점검하고 실태를 파악해 개선 방안을 내놓도록 지시했다.
금융사 CEO를 직접 겨냥한 수사가 확산되자 일각에서는 전 정부에서 임명되거나 연임에 성공한 인사들을 물갈이하려는 포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렇게 많은 주요 금융사 CEO들이 동시에 수사 선상에 오른 적은 없었다”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CEO들이 압박을 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편 우리은행은 이광구 행장이 채용비리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자 5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차기 행장 인선 일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사회는 이날 손태승 글로벌부문장에게 행장 전결권 등 행장의 일상 업무를 위임했다. 우리은행 안팎에서는 전임 이 행장이 상업은행 출신임을 감안해 손 부문장과 정원재 영업지원부문 겸 HR그룹 부문장 등 한일은행 출신 인사를 차기 행장 후보로 꼽고 있다.
다만 정부(예금보험공사) 측 비상임이사가 임원추천위원회에 합류할 경우 외부 출신 인사가 행장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금보험공사는 우리은행 지분의 18.78%를 갖고 있는 1대 주주다. 그러나 지난해 민영화에 성공한 우리은행에서 외부 출신 인사가 행장이 될 경우 낙하산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