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눈]농업의 헌법적 가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6일 03시 00분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울긋불긋 단풍이 온 산을 물들이는 계절이다. 절정에 이른 단풍을 보기 위해 산을 찾다 보면 덤으로 얻는 것이 하나 있다. 바쁜 일상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 들녘. 평소 무심코 지나쳐온 농촌과 농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풍경이다.

우리 농업과 농촌은 식량안보뿐만 아니라 자연경관과 환경보전, 수자원 확보와 홍수 방지, 지역사회 유지, 전통문화 보존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공익적 가치를 제공해준다. 이 땅의 농업인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토록 소중한 농업과 농촌을 아무런 대가 없이 지키며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을 묵묵히 뒷받침해왔다. 그 결과 1965년 31억 달러(약 3조4720억 원) 규모에 불과했던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16년 기준 세계 11위인 1조4112억 달러(약 1581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 농업과 농촌의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도시가구 소득 대비 농가소득 비율은 1965년 110.7%에서 2016년 63.5%로 하락했다. 농가 인구는 250만 명 선이 무너지면서 1970년(약 1500만 명)의 6분의 1 이하로 감소했다. 65세 이상 고령농 비율도 40.3%까지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그에 따른 피해는 커다란 사회적 비용으로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위해 정치권을 중심으로 30년 만에 헌법을 개정하려고 논의하고 있다. 이에 농협은 농업 및 농촌의 공익적 가치와 이에 대한 국가의 지원 의무를 헌법에 반영해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희생해온 농업인의 숙원을 풀어드리고자 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식량의 안정적 공급, 쾌적한 휴식공간 제공 등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도시민의 62.1%가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다. 이들 10명 중 8명은 농업과 농촌이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근간이라는 데 공감했다. 이런 인식은 헌법에 농업과 농촌의 가치가 반영돼야 한다는 데 당위성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농업의 역할을 식량 공급뿐만 아니라 공익적 기능 창출로 규정하고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근거를 연방헌법 104조에 명시하고 있다. 또 공익적 기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규정하고 이를 근거로 농정예산의 75%를 직접 지불 방식으로 농업인에게 지급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2003년부터 공익형 직접지불제 중심의 농정으로 전환하고 농정예산의 71%를 농업인에게 지급하고 있다.

이에 농협은 이달 1일부터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범국민 1000만 명 서명운동이라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농업인단체, 소비자단체, 학계, 경제계 등이 함께 하고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지켜낼 수 있도록 많은 국민이 동참해주길 기대한다. 농업인의 간절한 염원인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개정 헌법에 반영돼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온 농업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길 소망해 본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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