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중소기업은 몇 해 전 B전자업체에 부품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별도의 ‘보안 계약서’를 썼다. B업체와 장기계약을 하는 대신 B사의 제품 정보를 지키기 위해 다른 경쟁사에는 부품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사실상의 이면 서약서다. 통상 대기업과 거래를 맺는 조건으로 중소부품협력사가 다른 사업자와는 거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이른바 전속거래를 맺은 것이다. 이런 계약 관계로 지난해 전자업계의 평균임금이 131.7에 이를 때 전속 부품업체들은 납품단가 인하 등의 압박으로 수익성이 떨어져 평균임금은 50 정도에 그쳤다.
7일 중소기업중앙회와 산업연구원이 개최한 ‘하도급거래 공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이런 전속거래가 임금 격차를 벌리면서 사회 양극화를 초래하는 주범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재 국내에는 63개의 대기업집단 중 12개 제조업 대기업집단이 주로 전속거래를 하고 있다. 12개 대기업군의 28개 기업은 1차 협력업체 4866곳, 2차 협력업체 1172곳과 전속거래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날 발표에 나선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3년간(2014∼2016년)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가 6∼9%대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할 때 부품 계열사들은 7%대, 전속 부품협력업체는 3%대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주요 자동차생산국인 유럽 국가들이나 일본에서는 오히려 부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이 완성차 업체보다 높은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전속거래를 맺은 부품협력업체들은 납품단가 인하 압박과 다른 경쟁사와의 거래가 금지되면서 다른 자동차생산국의 부품업체에 비해 성장의 기회가 없어 이익 폭도 작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자산업도 대기업과 전속 부품협력업체 간 영업이익률 격차가 최대 4배(10%포인트 차이)에 이르렀다. 최근 3년간(2013∼2015년) 영업이익률을 보면 삼성전자는 9∼13%대, 전속협력업체는 3%대에 그쳤다. 삼성전자의 지난 3분기(7∼9월) 영업이익률이 23.4%로 급등한 것을 고려하면 전속 부품협력업체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을 것으로 산업연구원 측은 추정했다.
이 같은 관행이 오래되면서 전속 부품협력업체의 경쟁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영업이익률이 낮은 전속 부품협력업체들은 연구개발(R&D)에 소홀해지면서 경쟁력이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대기업들은 국내 부품업체들의 경쟁력이 약해지면서 해외 업체와 거래를 맺고 있다. 하지만 경쟁력이 더욱 약해진 국내 부품사들은 전속거래를 끊을 수조차 없어 위기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소기업계는 이 같은 관행을 끊기 위해 하도급법을 개정해 경영간섭에 대한 부분을 더욱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부품업체들의 활발한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서라도 전속거래를 명백한 불법 경영간섭으로 규제하고, 대기업 제품의 정보는 보호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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