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0시부터 밤 12시까지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축제 ‘광군제(光棍節)’에서 기록한 총 매출액이다. 단 하루 만에 현대자동차의 3분기(7∼9월) 매출액(24조2000억 원)을 훌쩍 넘어서는 괴력을 보여준 것이다. 광군제에 참여한 국내 기업들의 표정에도 미소가 돌아왔다. “우려했던 것보다 선방했다”는 반응으로 양국 간 해빙 무드가 중국 소비자들의 지갑을 조금씩 열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2일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에 따르면 올해 광군제 매출액은 지난해 1207억 위안(약 20조5000억 원)보다 39.3% 증가했다. 매년 기록 행진을 벌이고 있는데 전년 대비 증가율마저 지난해 32.3%에서 더 뛰었다. 광군제는 11월 11일 ‘독신자의 날’을 기념하고자 알리바바그룹이 주도해 만든 행사다. 중국에서는 ‘1’자가 외롭게 서 있는 독신자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 11월 11일을 ‘독신자의 날’로 부르고 있다.
올해 광군제에는 14만 개 이상의 브랜드가 참여했다. 폭발적인 성장의 견인차는 모바일 활성화와 글로벌 매출 확대였다. 올해 모바일을 통해 상품을 주문한 비중은 90%로 지난해(82%)보다 늘었다.
한국에서는 중국 최대의 유통행사에서 국내 기업들이 어떤 실적을 거둘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중국 소비자들이 광군제에서 구매한 국가별 상품 순위에서 한국은 일본 미국 호주 독일에 이어 5위에 올랐다. 지난해 일본, 미국에 이어 3위였던 것보다 두 계단 하락했다. 그러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한국 기업들의 마케팅이 냉각돼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선전했다는 평가다.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淘寶)’의 광군제 판촉 광고에는 배우 전지현이 깜짝 등장했다. 이른바 금한령(禁韓令)이 풀린 셈이다. 전지현은 지난해 말 중국 휴대전화 제조업체 오포(OPPO) 광고모델로 발탁됐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한국 연예인의 중국 방송, 광고 출연을 전면 금지하면서 올해 4월부터 광고에 등장하지 못했다.
광군제 당일에는 중국 국영방송이 국내 면세점 물류센터의 모습을 방영하기도 했다. 광군제가 막바지를 치닫던 11일 오후 11시 20분(현지 시간) 중국중앙(CC)TV2 채널은 인천에 있는 갤러리아면세점 물류센터 현장을 2분 46초간 생방송으로 연결했다. 광군제에서 팔린 상품을 포장하고 배송하는 데 분주한 물류센터의 모습을 담았다.
국내 유통 기업이 중국을 상대로 대규모 프로모션에 들어간 것은 이달 초부터였다. 31일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양국 외교부가 발표하면서 봉인이 해제된 것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광군제는 중국 시장에서의 재도약을 위한 첫 시험대이기도 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롯데면세점은 5∼11일 중국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1% 늘어났다. 신라인터넷면세점 중국어판 웹사이트도 1∼11일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했다. 이랜드그룹의 중국 법인 이랜드차이나는 11일 하루 동안 중국 온라인 쇼핑몰 티몰에서 4억5600만 위안(약 77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보다 39% 늘었다.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이랜드의 모직 더플코트로 24억 원어치가 팔렸다. LG생활건강은 티몰에서의 화장품 매출이 지난해 광군제 때보다 68% 많았다. 한방화장품 ‘후’ 브랜드의 천기단 화현세트는 지난해보다 160% 늘어난 3만1000개가 팔렸다.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는 “(한중 관계의)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사드 문제로 야기됐던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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