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는 16일 4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임원 승진 인사를 발표했다. 승진자 규모는 총 221명으로 2014년(227명) 이후 처음으로 200명을 넘겼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부터 이어져온 총수 부재 등으로 적체돼 있던 2년 치 인사 수요를 반영해서다. 》
매 분기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반도체 등 부품(DS) 부문은 백홍주 메모리사업부 제조센터장(부사장)을 포함해 99명이라는 역대 최대 승진자를 배출했다. 앞선 사장단 인사에 이은 성과주의 원칙이 재확인된 셈이다. 백 부사장은 1988년부터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에서 근무해온 메모리 반도체 전문가로 올해 3월부터 메모리사업부 제조센터장을 맡고 있다.
올해 승진자는 부사장 27명, 전무 60명, 상무 118명, 펠로우 1명, 마스터 15명이다. 펠로우와 마스터는 해당 분야의 최고 기술전문가들에게 임원급 대우를 해주면서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분야 인사제도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말 승진했어야 할 부사장 및 전무들을 대거 승진시켰다”며 “특히 부사장 승진 폭을 확대해 미래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을 두껍게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고위급 승진 규모가 커지다 보니 예년에 비해 발탁 및 신임 임원 수는 줄어들었다.
여성과 외국인에 대한 승진 기회는 예년처럼 보장했다. 올해 여성 신임 임원은 김승리 이금주 이정자 상무 등 7명이 나와 2015년의 8명 수준에 근접했다. 일반 임원 외에 펠로우와 마스터 중에서는 장은주 펠로우가 삼성전자의 여성 첫 펠로우라는 영예를 안게 됐다.
외국인은 글로벌 현장에서 큰 성과를 거둔 현지 핵심 임원을 대거 고위 임원으로 승진시켜 임원진의 다양성을 강화하고 글로벌 인재경영을 가속화했다. 발탁 승진은 전체 15명 중 DS부문이 12명을 차지해 사실상 ‘싹쓸이’했다. 특히 히타치와 후지쓰를 거쳐 현재 DS부문 미주 총괄에서 메모리마케팅담당으로 근무하는 제임스 엘리엇 전무(47)는 메모리 최대 실적을 견인한 점을 인정받아 승진연한보다 2년 먼저 승진했다.
홍보와 IR 등 경영지원실에서도 백수현 부사장과 이명진 부사장 등이 배출됐다. 백 부사장은 2014년부터 미디어커뮤니케이션그룹장을, 이 부사장은 IR그룹장을 맡고 있다.
이번 인사는 이재용 부회장이 2월 구속된 후 이뤄진 사실상의 첫 정기 인사라는 점에서도 재계의 이목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정기 임원 인사를 미루고 올해 5월 실무진만 소폭 교체했다. 이 때문에 이번 인사는 이 부회장의 인사 철학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결과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성과를 최우선으로 고려했지만 ‘깜짝 인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앞서 부문장 및 사장단 인사에서 강조됐던 ‘세대교체’ 기조는 이어졌다. 신임 임원들의 평균 나이는 46.5세로, 이번 인사 대상자 중 최연소자는 1975년생인 김정현 정혜순 김연정 고경민 최영상 상무다. 앞선 사장단 인사에서는 60세가 넘는 사장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이번 인사는 사장단 인사 발표 이후 2주 만에 이뤄졌는데, 2010년 이후 사장단 인사와 후속 인사의 시차가 일주일 이상 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인사는 이달 초 사장단 인사를 통해 삼성전자로 복귀한 정현호 사업지원TF장(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인사팀장)이 실무 작업을 총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전실이 해체된 뒤로 삼성전자와 다른 계열사와의 조율과 협의 과정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규모가 4년 만에 최대였던 데다, 초안을 만들어 이 부회장에게 전달한 뒤 이 부회장의 의견 등을 반영해 다시 조율하는 과정 등을 거치다 보니 쉽지 않은 작업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번 임원 승진자 중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전실 출신은 8명이다. 이 중 미전실 전략팀 담당임원이었던 이왕익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이 눈에 띈다. 이 부사장은 전략팀에서 관재(管財)를 담당하며 그룹 및 오너일가 재산을 관리해왔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를 통해 경영진 인사를 마무리했고 이르면 다음 주에 조직개편과 보직인사를 확정할 계획이다. 이날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벤처투자 등 삼성의 전자계열사도 일제히 임원인사를 발표했다.
이번 삼성전자 인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첫 여성 펠로우로 선임된 장은주 펠로우(47·종합기술원 무기소재연구소 소속)다. 삼성전자는 장 펠로우에 대해 “퀀텀닷(양자점) 디스플레이용 소재 합성 및 응용기술 전문가로 SUHD(초고화질) TV를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에서 펠로우 1명, 마스터 15명을 선임했는데 이 분야 역대 최대 규모다.
외국인 중 유럽 메모리 및 시스템LSI 반도체 사업 확대에 힘쓴 더못 라이언 전무(DS부문 구주총괄 반도체판매법인장)와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가로 20년 이상 삼성에서 근무하며 인공지능(AI) ‘빅스비’의 음성인식 등의 현지 개발을 주도한 디페쉬 샤 전무(DMC연구소 방갈로르연구소장)도 눈길을 끈다. 유리 마스오카 마스터는 여성이자 외국인으로서 최고 기술 전문가로 인정받게 됐다.
▼ 이돈태-안덕호 40대 부사장 눈길 ▼
이돈태 디자인경영센터장과 안덕호 DS부문 법무지원팀장은 만 49세로 유일한 40대 부사장이 됐다. 이 부사장은 영국 디자인회사 탠저린의 CEO를 맡다 2015년 삼성전자에 영입됐다. 안 부사장은 서울행정법원 판사 출신으로 42세에 전무로 승진한 뒤 이번에 최연소 부사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고졸 출신으로 상무로 승진한 남정만 상무도 화제에 올랐다. 남 상무는 1986년 전남기계공고를 졸업한 후 냉공조사업부 냉장고개발그룹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생활가전사업부 냉기개발·제품기술 수석을 거쳐 생활가전사업부 냉장고기술파트장 등을 지내며 꾸준히 냉장고 기술 개발에 힘써왔다.
1975년 12월생으로 올해 42세인 정혜순 상무는 이번 승진자 중 최연소 임원이 됐다. 1998년 부산대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입사한 정 상무는 무선사업부 소프트웨어개발그룹 업무를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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