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11월 21일]1997년 IMF가 부른 후유증…다시 외환위기 맞지 않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0일 17시 28분


코멘트
IMF 구제금융 신청 소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1997년 11월 22일자 1면.
IMF 구제금융 신청 소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1997년 11월 22일자 1면.
“정부는 심각한 외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21일 밤 국제통화기금(IMF)에 일단 2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했다.”(동아일보 1997년 11월 22일자 1면)

1997년 12월 3일 정부와 IMF는 이 같은 내용의 협상을 타결했다. 한때 외환보유액이 39억 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였다. 7월 태국에서 촉발된 동남아시아 외환위기가 이어졌지만 정부는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내 문제도 심각했다.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구조, 무분별한 단기외채 도입, 기업들의 방만한 차입경영과 관치금융, 전투적 노사관계 등이 나라밖 위기와 맞물리면서 IMF 관리체제를 맞게 됐다.

그해 동아일보는 ‘IMF의 충격과 교훈’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국가가 부도 위기에 몰리고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IMF 관리체제를 불러들인 낭패감은 어떤 수사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랴. 그 원초적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너무 일찍 터트렸던 샴페인에 취해 염통에 쉬 스는 줄 몰랐던 오만과 환각, 개방과 변혁이 요구되는 시대 앞에서 구태의연했던 국가경영 방식, 내실보다 외양에 치우쳐 빚더미 위에서도 한없이 벌이기에만 열중했던 기업 감각, 이 모든 ‘못남’에 대한 자괴가 있을 따름이다.”(1997년 12월 31일자 3면)

대가는 혹독했다. 금융회사에 진 빚을 갚지 못한 기업들이 부도와 경영 위기를 겪었고 많은 근로자가 해고됐다. 부실은행들은 다른 은행과 강제로 통폐합되는 등 정부 주도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받아들여야 했고 외국 자본에 팔리기도 했다.

회사원들이 구조조정으로 해고되거나 명예퇴직하면서 중산층은 무너졌다. 가장의 위신이 추락했고 중년 여성들이 생계형 취업에 나섰다.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이 급증했다.

청년 실업 문제도 컸다.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한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면서 출산율도 크게 떨어졌다.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동아일보DB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동아일보DB
대학가 분위기도 달라졌다. 캠퍼스는 청춘의 낭만적 공간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는 곳으로 바뀌었다. 전공의 가치가 취업이 잘되느냐 여부로 평가됐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할 만큼 ‘경제력’이 우선 가치가 됐다. 다행히 고강도 구조개혁에 이어 ‘금 모으기 운동’ 등 국민적인 동참으로 한국은 2001년 8월 구제금융 195억 달러를 상환하고 ‘IMF 체제’를 조기 졸업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 결과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가 지난 50년 간 한국경제가 겪은 가장 어려운 시기로 인식됐다(57.4%). 응답자의 59.7%는 외환위기가 당시 자신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외환위기 20년이 흐른 지금도 상황은 녹록치 않다. 한국 경제는 ‘냄비 속 개구리’이며 ‘제2의 IMF’를 우려하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KDI의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 구조개혁에 남은 시간이 ‘1~5년’이라는 응답이 90%가 넘었다. 다시 외환위기를 맞지 않으려면 철저한 개혁과 변화를 서둘러야한다는 얘기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