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도 “대기업 규제 풀어 투자 활성화” 호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9일 03시 00분


벤처생태계 발전 5개년 계획 발표

“이스라엘에 글로벌 유대인 네트워크가 있다면 한국에는 대기업이 있습니다.”

28일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스타트업 IR센터에서 기술 기반 벤처기업들이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오히려 대기업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드문 장면이 펼쳐졌다. 자금력이 있는 전 세계 유대인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이스라엘 벤처기업을 인수합병(M&A)해 혁신 창업가들이 새로운 영역에서도 지속적으로 재도전할 수 있는 밑천을 대듯 국내 벤처기업에도 대기업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이날 모임에서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이노비즈협회), IT여성기업인협회 등 기술기반 벤처중소기업 관련 협회 8곳이 9월에 결성한 ‘혁신벤처단체협의회(혁단협)’는 ‘혁신 벤처생태계 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정민 혁단협 사무국장은 “대기업과 혁신벤처기업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한국이 처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사전 규제 대신 대기업에 일단 문호를 열어주고, 부정행위가 있을 때는 엄벌하는 게 벤처생태계를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간 경제단체들이 200만 개 일자리 창출을 내걸고 실천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이례적이다. 혁단협은 이날 ‘5대 선결 인프라 구축’과 12대 분야 160개 추진과제를 250쪽 분량에 담아 제시했다. 한마디로 민간 주도로 정책을 만들자는 것이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정부가 과거처럼 미래의 산업발전을 세부적으로 예측해 주도하는 것은 불가능해 정책 수립과 집행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혁신벤처생태계를 갖춘 미국은 2012년 4월 미국의 신생기업 지원을 위해 이른바 ‘잡스법(JOBS Act)’을 만들었다. 스티브 케이스 AOL 창업자와 제리 양 야후 창업자 등 기업인과 학자가 힘을 합쳐 민간이 주도해 만든 이 정책은 기업공개(IPO) 절차와 규제를 신생 기업에 한해 대폭 간소화했다. 이 법 덕분에 메시지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인 ‘스냅챗’을 만든 신생 기업인 스냅은 창업 5년 만인 올 초 뉴욕증권거래소에 약 28조 원에 상장할 수 있었다. 혁단협 역시 민간 주도로 한국의 잡스법을 만들어 한국에서도 미국과 같은 벤처신화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혁단협은 이달 초 정부가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을 내놨지만 창업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지적했다. 성명기 이노비즈협회장은 “창업이 아닌 기존 혁신벤처기업의 성장을 통해서만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혁단협은 이번 5개년 계획 발표를 시작으로 2022년까지 달성할 목표를 정부와 공유하고 주무 부처와도 추진과제를 별도로 협의할 방침이다. 하지만 국회 법 개정 등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우선 시민단체들이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비롯해 현 정부여당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경영자에 대한 배임적용 완화 △차등의결권 도입 △대기업 분사기업의 상호출자기업집단 편입 유예 등이 포함돼 있어서다.

대기업의 벤처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현재 원천 금지된 지주회사의 기업형투자(CVC) 허용도 요청하고 있다. 현재 국내 벤처투자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55%로 미국의 99%에 비해 턱없이 낮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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