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창립 50주년]‘농어업 발전’ 한길 달려온 반세기… 새로운 100년 향해 다시 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30일 03시 00분


농산물 가격 안정-농업환경 체질 개선 등 통해 소득증대 기여
나주혁신도시에 새 보금자리… 한국농업 ‘백년대계’ 다지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다음 달 1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사명(社名)은 농어촌개발공사에서 농수산물유통공사로, 다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로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바뀌어 왔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농수산물 유통 개선과 수출 진흥을 통해 농어업을 발전시키고 농어민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달려왔다는 점이다. aT가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봤다.


1967년 농어촌개발공사

aT는 1967년 12월 1일 농수산물의 저장과 처리, 가공업 개발 육성을 통해 농어민의 소득을 증진시키기 위해 농어촌개발공사로 탄생했다. 낙후된 농어촌을 살리고 공업 지역과의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한 농공병진(農工竝進)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후 공익성이 높고 파급효과가 큰 농수산물 관련 사업은 물론 민간 기업이 수행하기 어려운 사업은 aT의 몫이었다.

1978년 가뭄으로 인해 고추 가격이 급등한 ‘고추 파동’을 계기로 농수산물 수습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aT는 ‘농수산물가격안정 사업단’을 발족해 농수산물 가격 안정을 추진했다. 수급 안정은 aT가 지난 50년 동안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해온 사업 중 하나. 가격이 하락하는 출하기에 농산물을 사들이고 가격상승기에 비축한 농산물을 시장에 내놓아 가격을 안정시키는 방식이다.

1986년 농수산물유통공사

농산물 생산이 늘고 국내 농가들이 상업농으로 바뀌면서 aT는 유통 개선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된다. 1986년 12월 농수산물유통공사로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다.

1990년대 전 세계적인 농산물 시장 개방의 물결은 aT에 또 다른 숙제를 던져줬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계기로 농산물 시장 개방에 직면한 국내 농업 환경의 체질을 개선하는 역할도 맡게 됐다. aT는 국내 농수산물 수급 안정 중심의 업무를 전략 수출 업무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aT는 이후 2002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aT의 얼굴이자 터전인 첨단 농업 컨벤션센터 aT센터를 세웠고 2005년 ‘고객과 함께 우리 농업의 가치를 창출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마케팅 전문 국민 기업’이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agro-Trade’의 이니셜을 딴 aT라는 약칭도 이때 정해졌다.

2012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2012년 ‘제2의 창립’을 선포하면서 aT는 지금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로 이름을 바꿨다. 유통과 수출에 이어 식품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취지였다.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2014년에는 전남 나주혁신도시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본사를 이전했다.

50년 전인 1967년 12월 1일, 동아일보에는 ‘농어촌개발공사의 발족’이란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농산물·임산물·수산물의 가공업 개발과 육성에 의한 농어민 소득 증대라는 과제는 너무나 절실한 것이기 때문에 농어촌개발공사의 발족에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50년 동안 aT는 농업 현장에서 필요한 사업을 펼치는 동시에 식품 업계와 소비자에게로 외연을 확대했고 농업인 소득 증진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해 왔다. 그리고 명실상부한 농수산식품 산업 진흥 전문 공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여인홍 aT 사장은 “지난 반세기간 쌓아온 사업역량을 바탕으로 무한한 잠재력과 융합 능력을 지닌 한국 농업의 가치를 증진시킴으로써 한국 농업의 백년대계를 굳건히 다지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식 기자 m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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