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의 지혜]빅데이터가 서말이라도 꿰어야 ‘정보 보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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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기술의 발전으로 손톱만 한 크기의 저장 매체에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데이터 덩어리, 즉 빅데이터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역설적으로 데이터 자체가 무의미한 일상에 가까워질 가능성도 커진다. 예컨대 내가 오늘 점심에 떡볶이가 아닌 햄버거를 먹은 것이나 정문에서 연구실까지 4분이 아닌 3분에 도달한 것은 우연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정보 이론의 창시자 클로드 섀넌은 인간이 이런 많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만들고 코드화함으로써 유용한 ‘정보’를 생성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보란 무수히 많은 데이터 속에서 일정한 패턴에 따라 걸러낸 결과다. 예를 들어 밤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이 떠 있다. 이러한 별들의 군집 속에 애초에 별자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혼란스러운 군집 속에서 유의미한 좌표를 발견하고, 그 좌표에 ‘전갈자리’ ‘천칭자리’ ‘북두칠성’ ‘큰곰자리’ 같은 이름을 붙였다. 섀넌이 보기에 정보란 바로 별자리 이름과 같은 것이다.

섀넌의 이론에 따르면 세상에는 버릴 데이터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쓰레기로 보이는 잡동사니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다다이즘을 신봉하는 독일 화가 쿠르트 슈비터스는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이렇게 만든 작품을 ‘메르츠(Merz)’라고 불렀는데, 그가 우연히 본 잡지 ‘상업(Kommerzbank)’의 중간 글자 일부를 뽑아내서 만든 우발적이고 무의미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슈비터스가 메르츠라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면서 메르츠는 ‘정크 아트(Junk Art)’의 대표작으로 부상했다. 슈비터스가 아니었다면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잡동사니들은 쓰레기 더미에 불과했을 것이다.

빅데이터가 유행하면서 슈비터스 같은 암호 해독가들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잉여 상태의 데이터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훌륭한 해독가가 패턴에 따라 정교하게 코드화하고 해석해낸 빅데이터만이 유의미한 정보로 사람들에게 인식될 것이다.

박영욱 숙명여대 교양학부 교수 imago1031@hanmail.net
#dbr#빅데이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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