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권 수백억에 해외 판매’ 거짓신고뒤 실제대금 수천억 페이퍼컴퍼니 빼돌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7일 03시 00분


국세청, 역외탈세 대대적 세무조사
수법 복잡해지고 탈세액 커져… 조세회피처 투자액 4년새 142%↑
올해 추징액 역대 최대규모 전망

#1.
중견기업 오너 A 씨는 회사가 갖고 있는 영업권을 해외 기업에 팔았다. 장부에는 수백억 원을 받은 것으로 적어놨지만, 실제로 오간 금액은 10배에 가까운 수천억 원에 달했다. A 씨는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거래 대금을 받은 뒤 국내로 몰래 송금하다가 덜미가 잡혔다. 국세청은 세금 및 과징금 1000억 원가량을 추징하고 A 씨와 회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2. 중소기업 대표 B 씨는 해외지점을 설립했다. 해외에서 자원을 수입해 국내 기업에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이에 따른 이익은 고스란히 버진아일랜드에 만든 B 씨 소유 페이퍼컴퍼니로 들어갔다. 지사를 설립한 회사는 아무 이익을 보지 못했다. B 씨는 조세 포탈과 해외금융계좌 미신고 등으로 300억 원대 추징을 당했다.

최근 소규모 기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역외탈세에 대해 국세청이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섰다. 역외탈세는 해외에 유령회사를 차리고 국내외로 자금을 교차 송금하는 등 수법이 복잡하고 탈세액이 커 과거에는 대기업과 대재산가 위주로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부 중소기업들도 탈세에 나서는 것으로 파악됐다. 잇따른 세무조사에도 역외탈세 규모가 줄어들지 않자 국세청은 ‘37명 동시 세무조사’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6일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역외탈세 추징 규모는 역대 최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10월까지 187명을 조사해 1조1439억 원을 추징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1조1037억 원) 추징 규모를 넘어섰다. 국세청은 지난해 228명을 조사해 1조3072억 원을 추징했다. 2012년과 비교할 경우 조사 대상자 수(12.9%)와 추징세액(58.3%)이 모두 늘어났다.

역외탈세 추징액이 매년 증가 추세지만, 급증하고 있는 국내 조세회피처 투자액과 비교하면 추징 증가 속도는 오히려 느린 편이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국수출입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기업이 버진아일랜드, 버뮤다 등 조세회피처 15곳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31억6890만 달러에 달한다. 4년 전인 2012년(13억840만 달러)과 비교하면 142% 증가한 규모다. 조세회피처로 향하는 모든 자금이 역외탈세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심스러운 자금의 증가 속도가 빠른 것만은 분명하다.

국세청은 지속적으로 역외탈세 조사 규모를 늘려나갈 방침이다. 우선 ‘파라다이스 문건’을 추가 검증해 세무조사에 나선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영국령 버뮤다 소재 법무법인 ‘애플비’에서 찾아낸 이 문건에는 한국인 232명의 탈세 혐의가 들어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대부분 법인 명의지만 이들이 실제로 조세회피처에서 부당한 거래를 한 것이 있는지 검증해 문제가 있으면 바로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올해부터 입수할 수 있게 된 조세회피처의 다양한 금융정보를 바탕으로 역외탈세 조사 강도를 높일 계획이다. 국세청은 올해부터 금융정보 자동교환협정에 따라 버진아일랜드, 케이맨제도 등 100여 개국으로부터 한국인 금융소득 정보 등을 매년 제공받는다. 김현준 국세청 조사국장은 “그동안 별도로 요청을 해야만 받을 수 있었던 세무정보를 정기적으로 제공받게 된 만큼 그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9월에 받은 자료를 현재 분석하고 있는데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엔 정밀 검증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세종=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역외탈세#세무조사#조세회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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