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조선해양은 현재 생산직 근로자 800명 중 750명이 휴직 중이다. 11월 선주에게 마지막 배를 인도한 뒤 내년 1월까지 일감이 텅 비었기 때문이다. 올해 수주 잔량이 5척으로 줄어들면서 예견된 일이었지만 회사와 정부, 채권단 모두 아직까지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성동조선과 STX조선해양 등 중견 조선소에 대한 채권단의 처리 방침은 정부가 앞으로 단행할 구조조정의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채권단 실사 결과 두 회사는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논리로만 보면 두 회사를 무리하게 끌고 가기보다는 정리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는 “실사만으로는 산업적 측면을 충분히 고려할 수 없다”며 성동조선에 대한 컨설팅을 별도로 받기로 해 결국 처리 결정은 내년으로 또 미뤄졌다. 이번 정부가 일자리에 지역 민심까지 고려하느라 계속 결론을 미루고 있어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부, “금융논리만 따르진 않겠다”
7일 정부에 따르면 구조조정과 관련한 범부처 장관급 회의인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가 8일 현 정부 출범 이후 7개월 만에 처음 열린다. 이 자리에선 이번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한 큰 기조가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금융 측면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을 균형 있게 보겠다”며 “사전에 부실을 예방하되 부실이 드러난 기업은 국책은행이 아닌 시장 중심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부가 좌고우면하는 사이 이미 부실이 발생한 중견 조선소의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사 작업도 원래 추석 연휴 전후로 끝내려고 했지만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그러자 채권단이 정부의 ‘하달’만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채권단은 두 회사 모두 추가 자금 지원이 없으면 내년을 넘기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STX조선해양에는 4조5000억 원, 성동조선에는 2조6000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상태다. 금융 논리로 본다면 청산이 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최근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6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8일 회의에서) 두 회사의 기술력과 업계 전망을 설명하고, 지금 당장 어렵다고 다 정리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며 “금융 논리에만 끌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 좌고우면하다 구조조정 계속 지체
정부는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만 뾰족한 묘수는 없는 상황이다. 두 조선소의 합병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성동조선(한국수출입은행), STX조선(KDB산업은행)은 대주주도 다르고 주력 선박도 차이가 난다. 합병으로 얻는 효과는 인력 감축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성동조선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가능성도 제기된다. STX조선은 최근 법정관리를 졸업하면서 부채가 출자 전환됐고 수주 잔량도 22척으로 그나마 사정이 낫다. 반면 성동조선은 2010년부터 자율협약을 끌어오면서 재무구조가 취약해졌다.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법원이 청산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작지 않다.
정부가 지금처럼 계속 이렇다 할 묘수를 찾지 못한 채 두 회사가 다시 도산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STX조선은 희망퇴직, 무급휴직 등을 통해 고정비를 30% 줄일 계획이다. 성동조선은 최근 희망퇴직을 통해 직원을 1650명(지난해 말)에서 1250명으로 줄인 상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동조선과 STX조선이 정리되면 산업 경쟁력이 후퇴하고 향후 조선시장이 회복했을 때 한국의 시장점유율이 줄어들 것”이라며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산업적 측면을 고려하다가는 부실 업체 지원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며 “원칙에 입각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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