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농촌은 나의 로망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할아버지의 밭일을 돕다가 점심때가 되면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빈 보리밥 새참을 먹고, 원두막에서 낮잠을 자고 있으면 할머니가 수박 먹으라고 깨우러 오는, 바쁜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농촌에서의 생활.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양가 친척 모두가 도시에 사는 나로서 평화로운 농촌 생활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선택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놀이터에서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뽐내며 할머니 댁에서 여름을 보낸 얘기를 쏟아내는 친구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뜻하지 않게 내 로망이 이뤄졌다. 아버지의 학업 때문에 온 가족이 미국 뉴욕주의 이타카라는 지역에서 2년간 살게 됐다. 그곳은 숲과 산이 있고 뒷마당의 나무에 다람쥐와 사슴이 사는, 어린 나에겐 천국 같은 곳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면 직접 사과를 딸 수 있는 농장도 있었는데 가을이 되면 부모님을 졸라 사과를 한 박스씩 따오곤 했다. 주인아주머니가 한가한 날에 방문하면 그녀에게 직접 사과 품종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고 애플 사이다와 사과파이도 얻어먹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실제로 미국에서 ‘사과 따기’는 인기 있는 체험활동이다. 일손이 부족한 주인이 미처 따지 못한 사과를 사람들이 찾아와 직접 수확하고 가져가는 시스템이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로 잘 정착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농작물 생산과 함께 다양한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농촌융복합산업’이 농촌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는 농부들이 농작물을 키우고(1차 산업), 농산물을 가공해 제품을 만들며(2차 산업), 체험농장 등 여러 서비스를 함께 제공(3차 산업)하는 개념으로 ‘6차산업’이라고도 부른다.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농부가 운영하는 농가식당이나 주말마다 아이들과 찾는 농장 체험처럼 우리 농촌에 이미 보편화된 개념이다.
농촌융복합산업은 농촌의 인구감소와 농가 소득 저하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각종 농촌 정책을 개선하고 다양한 지원 사업을 추진하며 농촌융복합산업을 장려하는 것은 지난 3년간 농촌융복합산업 인증사업자의 평균 매출이 해마다 10% 이상 증가하는 등 분명한 효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이 같은 움직임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농촌융복합산업을 통해 농촌을 ‘멀리 떠나지 않아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숙한’ 곳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도심을 떠나 찾게 되는 푸르른 평창의 양떼목장, 철마다 수국과 동백이 예쁘게 피어나는 제주도의 공원 모두 농촌융복합산업을 통해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된 곳들이다.
이렇듯 농부들이 정성껏 가꾼 농장이 도시인의 좋은 휴식처이자 소비처로 거듭나게 되는 농촌융복합산업이 더욱 활성화돼 사는 사람과 찾아온 사람이 함께 기뻐하는 농촌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