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역을 중심으로 번창했던 세종시 조치원읍 일대는 인근에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건설되고 2010년 고속철도(KTX) 오송역이 개통되면서 빠르게 쇠락했다. 최근 20년간 인구가 22% 넘게 줄었고 2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의 비율은 84%로 치솟았다.
세종시는 조치원 원도심을 되살리기 위해 2015년부터 자체적으로 재생사업을 했다. 주민들은 ‘마을박물관 만들기’ ‘기찻길 옆 숲길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이끌었다. 자영업자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10년 넘게 문 닫았던 시장을 새롭게 단장했다. 최근 시와 주민들은 ‘청춘 조치원 버전2’라는 새로운 재생사업을 구상했다.
조치원의 구상은 14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9차 도시재생특별위원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책사업인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 중 하나로 확정됐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시범사업을 신청한 지방자치단체 219곳 중 낙후 정도와 사업의 타당성, 효과 등을 평가해 68곳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번 시범 사업지는 지역 간 형평성을 고려해 서울을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에 골고루 퍼져 있다. 신청이 많았던 경기지역에서 8곳이 뽑혔고 전북 경북 경남이 6곳씩 선정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고려한 지역 안배의 결과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시범 사업지 68곳이 제안한 사업비 규모는 6조6400억 원. 정부는 내년 상반기(1∼6월) 사업비를 확정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당장 내년에만 정부 재정, 주택도시기금 등 1조1439억 원의 국비가 투입된다.
○ ‘제2의 말뫼’ 꿈꾸는 통영
시범사업 68개 가운데 사업 규모가 가장 큰 ‘경제기반형’은 부산, 인천, 전남 광양시 등의 경쟁자를 제치고 경남 통영시 1곳이 뽑혔다. 조선업 불황으로 문을 닫은 옛 신아조선소 터(51만 m² 규모)를 문화와 관광, 해양산업이 어우러진 통영의 허브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이다. 내년부터 6년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자체가 제시한 사업비만 1조1041억 원.
‘독메모리얼 해양공원’ ‘통영국제미술관’ ‘통영마리나24 수상스포츠센터’ 등 랜드마크가 될 관광시설을 만들고 쇼핑몰, 숙박시설을 유치할 예정이다. 조선업 중심의 지역 산업 구조를 개편할 수 있도록 크루즈·마리나 창업센터, 기업지원 융·복합 연구개발(R&D)센터도 조성된다. 통영시는 이 사업을 통해 1만2000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5000억 원 규모의 건설 수요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통영의 뉴딜 사업이 성공하면 ‘제2의 말뫼’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조선업으로 번창했던 스웨덴 항구 도시 말뫼는 세계 최대의 크레인을 단돈 1달러에 내다팔 정도로 쇠락했다가 도시재생을 통해 정보통신기술 중심의 친환경 도시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조치원읍을 비롯해 부산 사하구 천마마을, 경기 남양주시 원도심, 인천 부평구 부평1동, 경북 포항시 북구 동빈1가 등 5곳은 ‘스마트시티’를 접목한 시범사업으로 선정됐다.
○ “투기 발생하면 사업 연기하거나 중단”
이 밖에도 5만 m² 이하의 소규모 저층 주거지를 정비하는 ‘우리동네 살리기’ 사업은 부산 영도구, 인천 동구 등 17곳이, 저층 단독주택지(5만∼10만 m²)를 개선하는 ‘주거지 지원형’ 사업은 대구 북구, 대전 동구 등 16곳이 선정됐다.
구도심의 골목 상권과 주거지역을 함께 재생하는 ‘일반 근린형’은 광주 남구 등 15곳이, 20만 m² 규모의 ‘중심시가지형’은 전남 순천시, 경남 김해시 등 19곳이 뽑혔다.
정부는 앞으로 5년간 연평균 2조 원의 재정과 4조9000억 원의 주택도시기금, 연 3조 원 이상의 공기업 투자를 유도해 재생지역에 투자할 방침이다. 이번 시범사업과 관련해서는 경제기반형 사업은 6년간 250억 원, 중심시가지형 사업은 5년간 150억 원의 국비(재정 및 기금)가 투입된다. 우리동네 살리기는 3년간 50억 원의 국비가 지원된다. 이 돈에 지자체 예산과 부처 연계사업 예산,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의 투자 등이 더해져 사업이 진행된다. 스마트시티형 사업은 30억 원 안팎의 국비가 추가로 지원되며 별도 컨설팅도 진행된다.
정부는 사업지 선정 이후에도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거나 투기가 발생하면 사업을 연기하거나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동산 과열 양상을 보이는 지역은 내년 새로운 후보지를 선정할 때 공모 물량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미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는 시범사업 선정 때부터 배제된 상황이다.
또 올해는 지역 형평성을 고려해 시도별로 3∼5곳씩 정했지만 내년부터는 지자체 수요와 사업 준비 정도 등을 감안해 지역을 조정할 방침이다. 2차 사업지는 내년 3분기(7∼9월) 100개 안팎이 선정될 예정이다.
김호철 단국대 교수는 “투기 우려로 서울이 제외됐지만 슬럼화가 심한 대도시의 재생 사업이 시급한 만큼 투기 차단 방안을 정교하게 만들어 서울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 인프라뿐 아니라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주거 개선까지 종합적으로 감안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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