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교정 해주고 “백내장 수술”… 보험사기 권하는 병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7일 03시 00분


실손보험사기 2만8000건 적발

“실손의료보험 하나 가입하세요. 백내장 수술 받은 걸로 해서 보험금 받게 해드릴게요.”

지난해 A안과는 병원을 방문한 환자 중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을 골라 보험설계사 B 씨에게 소개해 줬다. 시력교정수술만 받아도 백내장 수술을 받은 것처럼 진단서를 써줄 테니 보험에 가입해 보험금을 타라고 꼬드긴 것이다. 병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타기 위해, 보험설계사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환자는 보험금을 받기 위해 보험사기에 기꺼이 동참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3월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백내장 수술, 체외충격파 쇄석술(요로 결석 제거술) 보험사기 기획조사를 진행해 총 306억 원 규모의 보험사기를 적발했다고 26일 밝혔다. 적발된 보험사기 건수는 백내장 수술이 총 1만5884건, 체외충격파 쇄석술이 1만2179건이었다. 부당하게 지급된 보험금 규모는 각각 119억6000만 원, 186억8000만 원에 이른다.

조사 결과 대부분의 병원이 보험설계사와 짜고 조직적으로 보험사기를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이 보험설계사에게 일종의 ‘수고비’를 주고 환자에게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도록 권유한 것이다. 환자들은 실손보험금 청구가 안 되는 수술을 받고도 수십만 원의 현금을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 쉽게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

백내장 수술과 체외충격파 쇄석술은 수술이 복잡하지 않고 진단서 조작이 쉬워 보험사기에 이용될 위험이 크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백내장 수술은 실제로는 한쪽 눈만 수술을 하고도 이틀에 걸쳐 두 눈 모두 수술한 것처럼 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시력교정수술을 백내장 수술로 둔갑시키는 방법이 주로 쓰였다. 안과는 백내장 수술 1건당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68만 원의 요양급여를 받는다.

체외충격파 쇄석술은 의사와 환자가 짜고 가짜 수술 진단서를 만들거나 수술 횟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요양급여와 보험금을 부정하게 탄 사례가 많았다. 한 병원은 아예 전담직원을 따로 둬 환자의 실손보험 가입 여부 확인, 허위진단서 작성, 보험설계사에 대한 사례금 지급 등의 업무를 시켰다.

이승진 금감원 보험사기대응단 조사역은 “체외충격파 쇄석술은 수술 횟수를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고 백내장 수술은 일반 안과 수술과 방법이 거의 비슷해 진단서 조작이 많았다”며 “환자들도 어차피 수술한 김에 공짜로 보험금을 타자는 마음으로 동참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작이 쉽다 보니 ‘상습범’도 많았다. 이번 조사에서 50건 이상 보험사기가 적발된 병원은 백내장 수술의 경우 50곳, 체외충격파 쇄석술은 70곳에 이른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 병원이 실손보험금을 쉽게 받게 해주겠다며 환자를 현혹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에 동참하는 건 엄연한 범죄”라며 “보험사기는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만큼 앞으로도 철저하게 조사해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보험사기#병원#실손의료보험#백내장#보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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