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4차 산업혁명’ ‘책임경영’. 2일 국내 주요 그룹이 발표한 2018년 신년사에 공통적으로 담긴 키워드다. 기업 신년사는 올 한 해 재계 주요 화두와 기업별 생존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핵심 메시지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각 그룹의 새해 신년사에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제와 4차 산업혁명 파고 속에서 혁신을 통해 생존해야 한다는 주문이 담겨 있었다.
○ “불확실성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 주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국내 5대 그룹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혁신’(23회)이었다. 그 어느 해보다 혁신에 대한 강한 주문이 이어진 건 국내외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은 “올해 세계 경제는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확산, 지정학적 리스크 등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던 지난해의 성과에 안주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구본준 LG그룹 부회장 역시 “보호무역의 거센 파고와 글로벌 경기 악화 가능성 등 정치·경제 환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예측 자체가 어려울 정도”라며 “근본적인 혁신”을 주문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정학적인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며 유가와 금리 상승은 원가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했다. 손경식 CJ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들의 비용 부담 증가와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 이자 부담 증가가 내수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에 따른 글로벌 기술 경쟁도 기업들이 올 한 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큰 숙제다. 업종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기업이 ‘기술’(12회)과 ‘연구개발(R&D)’(3회)을 통한 근본적인 체질 ‘변화’(19회)를 해답으로 꼽았다. 김기남 사장은 “인공지능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 정보기술(IT) 산업의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는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술 개발 문화를 사내에 정착시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자율주행 등 미래 핵심 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를 주문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그룹 전반에 디지털 전환을 이뤄 달라”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을 모든 사업 프로세스에 적용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글로벌 경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기존의 시장 경쟁 구도를 파괴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더 강력한 변혁을 촉구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그룹의 소프트파워 경쟁력을 일류 수준으로 혁신해줄 것과 이를 위한 인재 확보를 주문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4차 산업혁명 확산으로 모든 산업에서 데이터 축적 및 분석과 이를 기반으로 한 전략이 실행되고 있는데 효성은 시장과 고객, 기술 분야의 데이터 축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허창수 GS 회장은 ‘절차탁마(切磋琢磨·칼로 다듬고 줄로 쓸며 망치로 쪼고 숫돌로 간다)’의 자세로 지속적으로 역량을 쌓아 경쟁력을 확보해 달라고 주문했다. 구자열 LS 회장은 ‘변화에 한발 앞서 대응하고 미래를 주도적으로 개척한다’는 ‘응변창신(應變創新)’의 마음가짐을 당부했다.
▼ ‘고객’ 21회 언급… 국민신뢰 회복 의지 담겨 ▼
○ “사회로부터 신뢰 회복해야”
올해 신년사에는 ‘고객’(21회), ‘사랑·신뢰·존경’(4회), ‘투명성’(3회) 등의 표현이 유독 여러 차례 등장했다. 삼성전자는 법규를 준수하고 상생을 통한 기여로 고객과 사회로부터 사랑받는 회사가 되는 것을 올 한 해 3대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구본준 부회장 역시 “정도경영을 바탕으로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과 사회로부터 더 신뢰받는 기업이 되자”고 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새로운 SK의 원년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신동빈 회장은 “주변과 항상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며 “경영 투명성을 갖추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사회적 가치 창출을 기반으로 경영 활동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황창규 KT 회장도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우수 중소기업 지원 등을 통해 국민들이 기대하는 기업의 역할을 해내자고 당부했다.
○ “일하는 방식부터 바꾸자”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일하는 방식부터 근본적으로 바꿔보자는 주문도 담겼다. 최태원 회장은 조직 전반의 ‘딥체인지(Deep Change)’를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사무 공간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꼽았다. 같은 조직과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일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프로젝트 중심의 공간에서 협업과 공유를 활성화하는 환경으로 업무 공간을 바꾸겠다는 뜻이다.
최근 대기업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적용한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은 “주 35시간 근무제는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시행하는 것으로, 성공적인 사례로 잘 정착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차세대 융복합 사업과 성장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개방과 협업(Open & Collaboration)을 통해 사업 추진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며 “창의문화에 기반을 둔 일하는 방식을 정착시키고 산업생태계 내 관련 회사들과의 동반 성장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변화와 혁신을 실행하는 것은 사람이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조직문화”라며 “일에 대해 가치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공동의 정서와 업무 환경을 만들자”고 했다.
○ 틀 깬 시무식 눈길
올해 주요 그룹의 시무식은 형식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엿볼 수 있었다. 총수가 연단에서 딱딱하게 원고를 낭독하는 형식에서 탈피해 변화를 추구한 기업들이 눈에 띄었다.
2일 최태원 SK 회장은 ‘노타이’ 캐주얼 정장 차림으로 임직원 앞에 나섰다. 최 회장이 준비한 신년사는 지식나눔 강의로 유명한 테드(TED) 방식으로 진행됐다. 귀에 꽂는 이어마이크를 착용한 최 회장은 약 30분간 파워포인트(PPT) 화면을 띄워 가며 시무식을 진행했다.
LG전자는 입사 10년 이하 젊은 사원 2명이 사회를 맡아 ‘틀을 깨고 새로운 LG전자로 도약하는 원년’이라는 플래카드를 펼친 뒤 조성진 LG전자 부회장과 배상호 노조위원장의 목에 머플러를 직접 둘러줬다. 삼성전기는 혼성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의 노래 공연으로 즐거운 분위기에서 시무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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