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슨,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국내 무선청소기 시장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각 기업의 자존심 싸움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국내 한 가전제품업체 임원 A 씨의 말이다. 그는 무선청소기 경쟁에서 이기고 진다는 것은 매출·영업이익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무선청소기는 손잡이 부분에 모터가 달린 형태가 일반적이다. 모터가 바닥보다 한참 위에 있으니 유선청소기와 비교해 흡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해 모터 기술력이 무선청소기 제품의 질을 사실상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는 뜻이다. 무선청소기 시장을 개척한 다이슨이 종종 “모터 개발에만 20년간 3억2000만 파운드(약 4800억 원)를 투자했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A 씨는 “세탁기, 선풍기 등 생활가전 제품 대부분에는 크고 작은 모터가 하나 이상 탑재돼 있다. 주동력원인 모터 수명은 곧 제품 수명이라 할 만큼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 때문에 무선청소기 경쟁은 결국 각 가전업체의 기본기 싸움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무선청소기 시장은 현재 다이슨, 삼성전자, LG전자의 3파전 양상이다. 글로벌 청소기 시장 1위 업체 다이슨이 국내 무선청소기 시장을 사실상 독차지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중반부터 LG전자, 삼성전자가 차례로 제품을 출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해 6월 LG전자는 ‘코드제로 A9’, 지난해 9월 삼성전자가 ‘파워건’을 출시했다. 다이슨도 지난해 9월 무선청소기 ‘
LG전자 ‘코드제로 A9’.V8 카본 파이버’ 신제품을 글로벌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하며 맞불을 놓았다.
전자업계에서 추정하는 국내 무선청소기 시장 규모는 연간 50여만 대다. 대규모 시장 마케팅 여력이 있는 다이슨, 삼성전자, LG전자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지지만 일렉트로룩스, 테팔, 필립스 등이 판매하고 있는 무선청소기도 있다. 아직까지는 각 사의 구체적인 판매량과 시장점유율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지난해 8월 LG전자가 “코드제로 A9이 판매 2개월 만에 국내 판매량 4만 대를 넘어섰다. LG전자 전체 청소기 판매량의 60% 이상이 무선청소기 고객일 정도로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밝힌 것이 유일하다.
이런 가운데 22일 한국소비자원은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무선청소기들의 ‘청소성능’ ‘사용시간’ ‘소음’ ‘충전시간’ 등 주요 품질 및 안전성 등을 시험 평가한 결과를 내놓았다. 마룻바닥에서 얼마나 청소가 잘되는지, 한 번 충전하면 얼마 동안 사용할 수 있는지, 청소 시 소음은 심하지 않은지 등을 실험했다.
실험 결과 마룻바닥 먼지, 바닥틈새 청소 성능 비교에서는 다이슨(V8 플러피 프로), 테팔(에어포스 360), LG전자(코드제로 A9)가 ‘매우 우수’ 평가를 받았다. 흑미나 쌀, 튀밥, 시리얼 등 큰 덩어리를 청소하거나 벽 모서리 부분에 쌓인 먼지를 얼마나 강력하게 빨아들이는지를 가리는 실험에서는 다이슨, LG전자 제품이 ‘매우 우수’를 받았다.
제품 브랜드별로 평가결과를 살펴보면 LG전자 코드제로 A9은 청소성능과 충전시간 부문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 파워건은 소음 부문에서 우수성을 보였고, 다이슨은 청소성능과 사용시간, 소음 등 각 부문에서 골고루 안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LG전자 코드제로 A9은 바닥먼지, 바닥틈새 등 청소 성능 부문에서 ‘매우 우수’ 평가를 받았지만 소음 수치가 84dB로 다이슨(78dB), 삼성전자(82dB)과 비교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슨 제품도 바닥먼지, 바닥틈새 등 청소 성능 부문에서 ‘매우 우수’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의 경우 바닥틈새 청소 성능에서 ‘미흡’ 평가를 받아 아쉬움을 남겼다.
무선청소기는 배터리를 충전해 사용하는 제품이다. 이 때문에 배터리 충전에 걸리는 시간이 짧을수록 사용성이 높다. 한국소비자원은 배터리를 완전히 방전시킨 뒤 충전이 완료될 때까지 시간도 확인했는데 충전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제품은 다이슨(4시간 11분)이었다. 삼성전자는 3시간 38분, LG전자는 2시간 53분이 소요됐다.
무선청소기는 그동안 ‘세컨더리 가전’으로 인식됐지만 흡입력이 높아지고 사용시간이 길어지면서 유선청소기를 대체할 수준까지 됐다. 상대적으로 시장 진입이 늦은 삼성전자, LG전자가 올해 무게와 성능, 두 마리 토끼를 서둘러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면서 시장 판도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측은 “무선청소기 실험 결과 청소 성능과 사용시간, 소음 등 여러 면에서 제품 브랜드별로 장단점이 뚜렷이 드러났다. 소비자들은 생활 패턴에 맞게 성능 및 가격을 고려한 제품 선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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