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전자제품과 자율주행차, 드론들 사이로 난데없이 늘어선 수십 개의 침대에 바삐 발걸음을 움직이던 관람객들도 잠시 누워 ‘미래의 잠’을 체험했다.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 2018에서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던 전시관인 ‘슬립테크(SleepTech·Sleep과 Technology를 결합한 신조어로 수면의 질을 높여주는 기술)’ 존의 풍경이었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슬립테크 존이 가상현실(VR) 체험을 제치고 가장 ‘핫’한 체험관이 됐다”고 평가했다. 올해 두 번째로 CES 특별 전시에 나선 슬립테크 존의 규모는 지난해보다 커졌다. 노키아와 필립스 등 주요 전자업체들도 자체 모바일 및 센서 기술을 활용해 시장에 뛰어든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슬립테크 산업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슬립테크존은 지난해 미국 국립수면재단(National Sleep Foundation) 후원으로 CES 특별 전시를 시작했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면 관련 시장 규모는 2015년을 기준으로 2조 원을 넘어섰다. 일본은 6조 원, 미국은 20조 원 규모의 수면 관련 시장이 이미 형성됐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BCC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수면 시장은 2019년 약 80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현대인의 40%가 하루 적정 수면시간(8시간)보다 적은 7시간 이내로 잠을 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돈 주고서라도 잠을 사고픈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이번 전시에서 업체별로는 노키아가 ‘노키아 슬립(Nokia Sleep)’을 선보였다. 노키아는 올해 상반기(1~6월) 중 100달러(약 10만7000원) 안팎 가격에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센서가 부착된 매트 형태로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넣어두면 스마트폰 속 ‘헬스 메이트’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과 연동해 사용자의 움직임과 코골이, 심장박동을 체크해준다. 사용자가 침대에 누우면 센서가 인식해 자동으로 방 안 조명을 꺼주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방 안 온도를 올려주는 IoT 기기다. 노키아는 “하루에 12분 더 잘 수 있다”며 “12분이 가져올 인생의 변화를 느껴보라”고 홍보했다. 노키아는 2016년 프랑스 스타트업인 위딩(Withing)을 인수하고 슬립테크 시장 진출을 준비해왔다.
필립스도 헤드밴드 형태의 웨어러블인 ‘스마트 슬립’을 CES에서 처음 공개했다. 머리에 쓰고 자면 뇌의 활동을 측정해 깊은 수면 상태를 이어갈 수 있도록 백색소음을 낸다. 역시 상반기 중 400달러 정도 가격에 출시될 예정이다.
국내업체 중에선 코웨이가 스마트 베드 시스템으로 CES 2018 혁신상을 받았다. 매트리스에 IoT 기술을 결합시켜 사용자의 수면 행태와 주변 환경을 분석해 수면 방해 요소를 최소화해준다. 사용자가 코를 골면 에어 매트리스가 목과 어깨 부위 등에 부드러운 자극을 줘서 코골이를 멈추게 도와주는 식이다. 실내 온도가 바뀌면 매트리스 온도도 그에 맞춰 자동 조절되고 공기 질이 나빠지면 공기청정기가 작동한다.
삼성전자도 이스라엘의 IoT 벤처기업을 인수해 2015년 센서 형태의 ‘슬립 센스’를 공개했지만 아직 제품은 출시하지 않았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에어컨 등 수면을 도울 수 있는 가전제품에 센서를 탑재하려고 준비 중이나 아직 제품을 내놓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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