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효 SK텔레콤 ICT기술원장은 1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초정밀지도(HD맵)는 현실과 가상공간을 잇는 관문이자 새로운 가능성”이라며 “가상화된 상점과 서비스가 만들어지면 엄청난 시장이 창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텔레콤 제공
“초정밀지도(HD맵)는 현실과 가상세계가 공존하는 5세대(5G) 시대의 게이트웨이(관문)가 될 것입니다.”
SK텔레콤이 ‘맵(지도)’에 천착하는 이유를 묻자 박진효 SK텔레콤 ICT기술원장(CTO·최고기술책임자)은 대뜸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17일 서울 중구 SK텔레콤 을지로 사옥에서 만난 박 원장은 “예전에는 지도가 단지 가고자 하는 길을 보여주는 그림책이었다면 앞으로는 리얼월드(실재하는 세상)를 사이버월드로 가져다 놓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SK텔레콤 연구개발(R&D) 컨트롤타워인 ICT기술원(옛 종합기술원)의 수장에 올랐다.
SK텔레콤은 최근 6개월 사이 초정밀지도와 관련된 협약만 2건을 성사시켰다. 올해 글로벌업체와의 첫 협약으로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 세계가전전시회(CES)에서 독일 초정밀지도 서비스업체 ‘히어’와 손잡았다. 지난해 5월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인 미국 엔비디아와 자율주행차 공동 개발 협약을 마친 뒤 첫 협력 분야로 삼은 것도 초정밀지도 개발이었다.
초정밀지도는 센티미터(cm) 수준의 정확도로 차량과 교통 정보를 수집해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로 꼽힌다. SK텔레콤이 개발 중인 5G 통신기술 역시 자율주행차에 필수다. 초정밀지도에 대한 이 회사의 관심은 자율주행기술을 위한 수단으로 해석돼 왔다. 그런데 박 원장이 설명한 ‘플랫폼으로서의 맵’은 이러한 전제의 주객을 바꾸는 얘기로 들렸다.
“우리가 자율주행차 실험에 나서는 이유는 차량을 직접 만든다기보다 맵을 계속 적용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테스트베드 차원이다. 맵을 기반으로 차량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모으고 가공해서 다른 데이터와 융합해 차별화된 경험을 고객에게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박 원장은 말했다. 그는 잘나가는 사업인 ‘T맵’에 대한 한계도 짚었다. “T맵은 사람을 위한 지도인데, 2020년 이후 사람보다 기계가 더 많이 운전하는 시대에는 자동차가 이해하는 맵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 맵이 바로 초정밀지도”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미래 맵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은 맵이 그냥 그림이지만 초정밀지도가 되면 도로의 차선과 각 건물이 수십 cm의 정확도를 가지고 비디오를 찍은 것처럼 실물과 유사한 형태로 나온다. 거기에 특정 공간에 관련된 데이터를 씌우면 쇼핑, 커머스 등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의 신년사에 담긴 수수께끼도 저절로 풀렸다. 박 사장은 2일 임직원들에게 “4G까지는 기존 유선 서비스가 무선화되는 과정이었지만 5G는 오프라인 세상 자체가 무선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며 “지도 기반의 서비스가 모두 무선화되고 인공지능(AI)이 융합되는 등 오프라인과 모바일의 융합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의 특징 중 하나인 ‘CPS(Cyber Physical System·가상물리시스템)’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게 박 원장의 설명이다. CPS는 모든 사물이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연결되고 컴퓨팅과 물리 세계가 융합돼 지능화되는 것이다.
박 원장은 “리얼월드를 디지털화해서 통신을 통해 사이버월드로 옮기면 현실의 모든 데이터가 사이버공간에 쌓이고 그 데이터로 새로운 경험과 서비스를 만들어 다시 통신을 통해 리얼월드에 투영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박정호 사장은 2016년 SK C&C 대표 시절 CPS 개념을 공장에 적용해 공장의 모든 상황을 사이버 공간에서 미리 확인하고 예측할 수 있는 스마트팩토리 브랜드 ‘스칼라’를 선보이기도 했다.
CPS에서 SK텔레콤이 가진 강점은 5G, AI, IoT 등 핵심 기술력이다. SK텔레콤은 초정밀지도를 기반으로 CPS를 상업에 연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 중이다. 도로를 중심으로 한 현실을 디지털화해 가상으로 옮기면 ‘매트릭스’ 같은 세상이 가능하다. 한 개였던 현실 세상이 가상세계가 더해져 ‘곱하기 2 이상’이 되는 셈이다. 가상현실(VR) 기기를 쓰고 “가로수길로 가자”고 하면 눈앞에 가상의 가로수길이 펼쳐지고 “앞으로”라고 말하면 스트릿뷰가 실제로 걸어가는 것처럼 바뀌는 형태다. 음식점에 들어가 맛있어 보이면 주문부터 배달까지 되는 서비스도 가능하다. 가상영화관에 들어가면 눈앞의 VR 화면에 대형 아이맥스(IMAX) 스크린이 펼쳐지고 먼 지역에 사는 친구와 옆자리에 앉아 대화하면서 관람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고객이 온라인상에서 오프라인에 있는 것처럼 경험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박진효 SK텔레콤 ICT기술원장 약력 ::
△ 1989년 경남 마산 창신고 졸업 △ 2003년 고려대 정보통신공학 석사 △ 1994년 LG전자 시스템개발실 △ 1998년 SK텔레콤 이리듐사업부 기술운용팀 △ 1999년 SK텔레콤 중앙연구원 IMT-2000 TF △ 2008년 SK텔레콤 NW기술원 기술전략팀 △ 2013년 SK텔레콤 NW기술원 원장 △ 2017년 SK텔레콤 ICT기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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