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2423억… 가상통화 신종 사기 148억
타인 명의 ‘대포 가상계좌’ 악용
ATM과 달리 출금규모 제한 없어… ‘거래 실명제’도 무용지물 우려
지난해 가상통화를 이용한 보이스피싱 피해 규모가 15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당 피해 금액이 기존 보이스피싱의 2배를 웃돌 뿐만 아니라 사기 수법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도화된 가상통화 보이스피싱이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423억 원으로 1년 전보다 26%(499억 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 건수는 4만9948건으로 8.8%(4027건) 증가했다.
가상통화를 피해금 인출 수단으로 악용하는 신종 수법이 등장하면서 보이스피싱 피해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가상통화를 악용한 피해금액은 148억 원으로 전체 피해액 증가분의 30%를 차지했다. 건당 피해액은 평균 1137만 원으로 전체 보이스피싱 건당 피해액(455만 원)의 2배가 넘었다. 한 거래소에서만 6개월 동안 42억3000만 원의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20대 여성이 한꺼번에 8억 원을 털리는 사건도 발생했다. 범인은 이 여성에게 검찰을 사칭해 대포통장 3개와 가상통화 거래소의 ‘대포 가상계좌’ 1개로 8억 원을 송금하도록 유도했다. 이후 대포통장으로 받은 돈도 거래소로 옮겨 가상통화 8억 원어치를 산 뒤 현금화해 달아났다. 김범수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팀장은 “거래소 계좌가 출금 규모에 제한이 없는 점을 악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의 보이스피싱은 지난달 31일부터 시행된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를 통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타인의 명의로 가상계좌를 만들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를 뛰어넘는 최신 수법까지 등장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능화된 가상통화 보이스피싱 유형으로 피해자 A, B 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돈이 필요했던 A 씨에게 금융회사 직원이라는 남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남성은 “돈을 여러 계좌로 옮겨 입출금 실적을 늘리는 ‘거래증강’을 하면 신용등급이 올라가고 저금리 대출도 가능하다”며 계좌번호와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며칠 뒤 5600만 원이 실제로 입금됐다. 남성은 A 씨에게 “거래증강을 위해 우리가 만들어 둔 당신 명의의 계좌로 한 번 더 돈을 옮기라”고 지시했다. 본인 명의의 계좌라 A 씨는 의심 없이 돈을 보냈다.
하지만 이는 사기였다. 5600만 원은 이 남성이 또 다른 보이스피싱 피해자 B 씨에게 검찰을 사칭해 뜯어낸 피해금이었다. A 씨 명의의 또 다른 계좌는 범인이 가상통화 거래소에 만들어 둔 가상계좌였다. 범인은 A 씨 가상계좌로 입금된 B 씨의 돈으로 가상통화를 산 뒤 이를 현금화해 잠적했다.
한편 광범위하게 유출된 개인정보를 악용해 성별, 연령대별로 ‘맞춤형 보이스피싱’을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대 남성을 대상으로는 ‘취업사기’, 20, 30대 여성은 ‘정부기관 사칭’, 40, 50대는 ‘대출 빙자’, 50대 이상은 ‘납치형’ 보이스피싱을 집중적으로 시도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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