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월드] “한국 인재 모셔라” 日 기업들, 한국 청년들 반기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6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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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이트 컨설팅 재팬 경영이사회를 이끄는 송수영 의장(55)은 해마다 200여 명의 신입사원 교육을 책임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 앞에서 훈시할 때 “열심히 일해서 하루빨리 파트너가 되고 임원이 되라. 엄청난 보상이 기다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요즘은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라도 상의하고 즐거운 회사생활을 위해 노력해 달라. 다만 건강을 해칠 정도로 일하면 안 된다”고 조용조용 말한다. 신입사원 앞에서 “열심히 일해서 출세하라”는 말을 하면 야만인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의 성과를 내세우며 경기 부활과 일손 부족을 자랑하지만 ‘행복한 비명’ 속에는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특히 ‘귀하신 몸’ 취급을 받으면서도 도전의식도 동기도 없는 젊은이들이 고민거리다. 이들은 취직을 해도 직장일은 적당히 하고 개인생활을 중시하며 쉽게 전직을 반복한다. 최근 신입 직장인들의 3년 이내 이직률은 30%에 이른다. 과거 선배들처럼 출세(승진)를 위해 삶을 희생하지 않으며 ‘골치아픈’ 관리직은 아예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일본 기업 간부들, 한국 젊은이 ‘헝그리 정신’에 반색


일본 기업들이 한국의 젊은 인력에 반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년 전 일본 유수의 대기업에 지인의 아들(33)을 소개해준 한국인 경영인은 “지인과 회사 양쪽에서 은인 대접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인의 아들은 한국에서라면 취업이 어려울 학벌이었지만 어려서 외국생활을 해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했다. 그는 이 기업에 입사하자 곧바로 싱가포르 지사 근무를 자원했고 현지 근무 3년 만에 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회사는 그 뒤 적극적으로 한국인 채용을 늘렸다.

한국 젊은이를 고용해본 일본 글로벌 기업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은 해외근무에 적극적이란 점이다. 일본인 직원 대부분이 해외근무를 꺼리고 발령을 내면 사표를 내 골머리를 싸매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해외근무는 급여도 많고 출세로 연결되지만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출세에 관심이 없다”며 한숨을 푹푹 쉰다. 한국 젊은이들에 대해선 “헝그리 정신이 살아 있고, 업무능력도 어학능력도 뛰어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한국인 사원들의 패기를 가장 반가워하는 이들은 일본인 임원들이라는 말도 들린다. 이들에게서 자신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같은 평가에 힘입어 지난해 일본에 취업한 한국인은 5만 5900여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증가폭도 사상 최대였다. 일본 기업들은 한국 대졸자들을 모시기 위해 지방캠퍼스까지 찾아가 취업설명회를 여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일본 안에 다 있는데 왜 굳이 해외에서 고생을…”


일본 젊은 세대가 해외 근무에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모든 게 갖춰진 일본이 편하기 때문이다. 산교노리츠(産業能率)대가 2017년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입사 뒤 해외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60.4%에 달했다. 2001년 20.2%에서 크게 늘었다. 그 이유로는 ‘외국어 구사에 자신이 없다’(63.6%)로 가장 많았고 가족사정, 테러 등 안전문제 등이 뒤를 이었다.

같은 이유로 유학도 잘 안 간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해외에서 공부하는 일본인 유학생은 5만 4676명으로, 고점을 찍은 2004년(8만 2945명)에 비해 30% 이상 격감했다. 특히 미국행 유학생이 격감했다. 미국 국제교육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일본인 유학생은 1만 9000여 명으로 국가별 8위에 머물렀다. 1994~1997년에는 일본인 유학생이 1위였다. 문부성은 2014년부터 장학기금 ‘도약하자 유학 재팬’을 설치하는 등 지원에 나섰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출세 싫어요,” 일은 적당히, 나만의 생활 중요


출세가 더 이상 직장에서의 ‘당근’이 되지 못하는 현상은 각종 조사 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산교노리츠대 조사에서는 최종목표로 ‘사장’을 꼽은 신입사원은 버블경제기인 1990년에는 46.7%였지만 2017년에는 8.9%에 그쳤다. 같은 기간 ‘지위나 직책에 관심이 없다’는 응답은 20.0%에서 49.9%로 늘었다.

지난해 5월 미쓰비시UFJ 리서치 앤 컨설팅이 실시한 신입사원 1300명 대상 조사에서도 ‘출세하고 싶다’와 ‘출세하지 않고도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 중 양자택일하라는 질문에 전자가 46.6%, 후자가 53.4%를 차지했다. 직장은 즐겁게 생활비를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젊은이가 늘어가는 가운데 기업들은 급여나 승진 대신 무엇으로 이들을 붙잡아놓을지 고민하는 형국이다.

이런 젊은이들을 상대해야 해서일까. 산교노리츠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상장기업 과장(課長)에 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더 이상 출세(승진)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한 과장이 49.5%로 약 절반을 차지했다. 일본 기업에서 과장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실적을 내는 ‘허리’에 해당한다. 기업인사 전문 저널리스트인 미조우에 노리후미 씨(溝上憲文)는 업무량, 부하와의 관계에서의 중압감은 늘어난 반면 직책에 어울리는 보수와 권한, 재량은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긴 불경기 보며 자란 세대, ‘욕심’ 자체를 기피


흔히 ‘유토리(여유) 세대’라 불리는 일본의 20~30대(1980년대 말~1990년대 생)는 성장과정 내내 버블 붕괴와 장기 불황을 목격한 탓에 뭔가에 욕심을 내지 못한다. 인생의 덧없음을 미리 깨닫고 달관한 것처럼 행동한다 해서 ‘사토리(달관)’ 세대라 불리기도 한다.

유토리 세대는 물욕이 없어 돈이 있더라도 집도 차도 사지 않고 유니클로 등 저가패션 등을 선호한다. 이들이 소비의 주체가 되면서 산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령 일본 자동차 업계는 젊은 층의 자동차 구매 기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태에는 △고도성장, 대량소비 사회에 대한 반동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후 급증한 미래에 대한 불안 △스마트폰 등 개인소비 증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결혼과 출산에도 관심이 적다. 지난해 4월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50세까지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의 비율인 ‘생애미혼율’은 2015년 기준으로 남성이 23.4%, 여성은 14.1%였다. 남성 4명 중 1명, 여성은 7명 중 1명이 평생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애나 결혼에 소극적인 젊은 남성을 지칭하는 ‘초식남’이 유행어가 된지 오래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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