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면서 주요 기업들이 신임 사외이사에 누구를 영입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 기업 사외이사 후보는 노무현 정부 인사나 노동조합 출신 등이 거론되고 있어 ‘정치 외풍’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회의도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방어’라는 설명이다.
다음 달 9일 주주총회를 앞둔 포스코는 최근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통해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추천했다. 김 전 장관은 관료 출신(행시 15회)으로 국무총리실 산업심의관을 겨쳐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정책관리비서관, 산업정책비서관, 중소기업청장과 한경대 총장을 지냈다.
KT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KT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를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정책특별보좌관을 지냈다.
금융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IBK기업은행은 최근 김정훈 민주금융발전네트워크(민금넷) 전문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김 신임 사외이사는 한국금융연수원 총무부장, 감사실장, 노조위원장 등을 지냈다. 민금넷은 전·현직 금융기관 관계자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로,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했다.
재계에서는 정치권 입김이 강한 한국 현실에서 없던 일은 아니지만 과거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손성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외이사제도의 핵심은 독립성인데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 경영진으로부터의 독립 못지않게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며 “만약 민간기업이 사외이사를 정치권과의 소통 채널로 쓰려 한다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선임에 정치적 고려가 반영되면서 이를 둘러싼 회사 안팎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KT&G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한 이후 2대 주주인 IBK기업은행이 현 경영진 연임에 반대하며 사외이사 추천에 적극 개입하려 하고 있다. KT에서는 이사들로 구성된 사외이사추천위원들 간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가운데 ‘물갈이’를 하려는 측과 막으려는 측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후보로 오른 일부 사외이사의 면면을 보면 정권 요구에 맞춰 인선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며 “경영진을 견제하고 자문에 응하려는 원래 목적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외이사를 통한 노조 및 소액주주 권한 강화 움직임도 강해지고 있다. 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KB노조)는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최근 KB금융지주 사외이사 후보로 노동 분야 전문가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를 추천했다. 앞서 KB노조는 지난해 11월에도 임시주주총회에서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현행법상 0.1% 이상 의결권을 가진 주주는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당시 KB금융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졌지만 표 대결에서 져 선임이 좌절됐다.
박영석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주주나 경영진 권한이 너무 강해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고액 연봉자가 많은 금융권 노조부터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 전 장관과 함께 포스코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박경서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올해 처음으로 주주제안을 통해 추천된 사외이사 후보다. 주주제안 제도는 소액주주들이 배당 확대, 이사·감사 선임 등 의안을 주주총회에 직접 제안하는 것을 말한다. 박 교수는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공시위원장,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등을 지낸 지배구조 및 재무·금융 분야 전문가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상반기(1∼6월) 현대글로비스를 시작으로 주주권익보호담당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하고 다른 계열사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경영 자문을 위한 사외이사 선임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여성, 반도체 전문가,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최근 윤영민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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