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20일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방침을 내놓자 재건축 추진 아파트 단지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안전진단 절차를 서두르고 있다. 이에 대응해 국토부 역시 제도 개편을 서두르면서 재건축 단지 주민과 국토부 간에 쫓고 쫓기는 ‘속도전’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국토부에 제도 보완을 공식 요구하는 등 조직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26일 조달청에 따르면 20일 이후 재건축 아파트 안전진단 용역입찰 공고를 낸 단지는 12곳이다. 서울 강동구가 4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영등포구가 3곳으로 뒤를 이었다. 송파구와 강남구는 각각 1개 단지의 안전진단 입찰 공고를 냈다. 부산과 광주 등 지방에서도 안전진단을 서두르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들이 앞다퉈 안전진단 업체 찾기에 나선 것은 제도가 바뀌기 전에 용역업체와 계약을 끝내면 규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해당 구에 안전진단 의뢰를 하지 않은 단지들은 주민 동의 및 자금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주민 동의(10%)→안전진단 신청→현장 실사→안전진단 순으로 이뤄진다. 안전진단 업체와의 계약은 해당 구의 현장 실사 이후에 진행된다.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는 단지별로 28일까지 양천구에 안전진단 신청을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 마포구 성산시영아파트 주민들은 용역업체 선정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돈을 걷고 있다.
국토부는 이에 대응해 제도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국토부는 안전진단 배점 기준, 조건부 재건축 타당성 검증 의무화 등을 담은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 고시’ 개정안 행정예고 기간을 10일로 설정했다. 통상 행정예고 기간인 20일의 절반이다. 국토부는 다음 달 10일이면 새 안전진단 기준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그 전까지 안전진단 업체와 용역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관련 법안인 도시정비법 입법 예고 역시 3월 말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속도전에서 재건축 단지 주민들이 이길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일반적으로 구의 현장 실사와 안전진단 용역입찰까지는 최소 20일이 걸린다. 입찰 후 안전진단 업체와 계약을 맺기까지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최근 안전진단 업체와 용역계약을 한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입찰 공고 이후 계약까지 45일이나 걸렸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주민들은 조직적인 대응에 나섰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주민들로 구성된 ‘양천시민발전연대’는 26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선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을 만나 건물 내진성능평가 항목을 별도로 만들고 대면(對面) 공청회를 열어달라는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이 단체 관계자는 “마포구, 노원구 등 다른 지역 주민들과 함께 ‘비강남권 차별 저지 범국민대책본부’ 설립을 추진 중이며 행정예고 가처분 신청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서울시는 이날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송파구 미성·크로바아파트(1350채)와 진주아파트(1507채)의 이주 시기를 각각 7월, 10월 이후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단지별로 애초 희망한 이주 시기보다 3∼6개월 밀렸다. 서울시는 인근 지역 전월세난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전까지 이주 시기가 가장 많이 연기된 단지는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로 4개월 밀렸다. 서울시가 두 단지의 이주 시기를 최대 6개월까지 미루면서 업계에서는 서울시가 이주 시기 조정을 통해 재건축 사업 통제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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