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내 패시브 펀드(전체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는 펀드)의 순자산은 33조 원으로 30조 원 규모의 액티브 펀드(펀드매니저가 선별한 개별 종목에 투자하는 펀드)를 앞질렀다. 국내 금융투자 시장에서 패시브 펀드 규모가 액티브 펀드를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그 이유를 지난해 코스피가 박스권을 탈출하는 등 주식시장이 활기를 띠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시가총액 비중이 큰 삼성전자 등 대형주를 중심으로 코스피가 크게 오르면서 안정적인 수익률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몰렸다는 것이다. 종목 간 수익률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펀드매니저가 투자 종목을 골라서 운용하는 액티브 펀드의 성과가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볼 때 국내 증시에서 패시브 투자의 강세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패시브 펀드는 액티브 펀드와 대비되는 상품으로 코스피200 등 특정 주가지수에 연동해 지수 상승률만큼의 수익률을 추구한다. 인덱스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가 이에 해당한다.
패시브 펀드는 대체로 초기에 구성한 종목들이 크게 변하지 않아 액티브 펀드보다 종목 회전율이 낮다. 또 종목을 바꿀 때 필요한 기업 가치평가 등 리서치 부담이 작아 운용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투자자들이 지불하는 비용이 액티브 펀드보다 크게 낮다는 의미다. 비용 절감 효과는 장기적으로 투자자들의 수익으로 환원되는 효과로 나타난다.
패시브 펀드의 강세는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공통적인 투자 흐름이다. 미국, 일본 시장에서는 특히 ETF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저금리 환경에서 투자자들은 고위험·고수익의 투자보다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투자자들의 미래 기대 수익률도 낮아졌다.
만약 지난 30년 동안 코스피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고 가정하면 투자자들의 12개월 평균 수익률은 4%를 넘는다. 과거와 같은 고성장 시대가 지났기 때문에 향후 30년도 이와 유사한 수준의 수익률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굳이 일본의 사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투자자들은 눈높이를 낮출 수밖에 없다. 가령 금융투자 상품에서 2% 안팎의 연평균 수익률을 기대한다면 1%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투자 방법이다. 평균 보수가 1.5%에 이르는 액티브 펀드에서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이런 흐름은 경제 성장 속도와 자본시장 발전 단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1990년대 중반 수준이다. 장기투자 문화와 연금 상품 등도 이제 시장이 확대되는 단계다. 하지만 선진국의 사례를 되짚어 볼 때 패시브 투자 선호 흐름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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