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 세계 1위로 꼽히는 IDQ의 본사는 스위스 제네바 남부 작은 마을인 카루즈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옛 다이아몬드 공방을 개조한 낡은 건물에 흔한 간판 하나 없는 이 회사는 지난달 SK텔레콤이 700억 원을 투자해 인수한 양자통신 기술의 본산이다.
1일(현지 시간) IDQ 본사 현장을 안내한 박진효 SK텔레콤 ICT기술원장(CTO·최고기술책임자)는 “IDQ의 원천기술로 양자암호통신과 자율주행차 양자센서 분야에서 무궁무진한 신기술 개발이 가능하다”며 “IDQ는 (이동통신 원천 기술을 가진) ‘제2의 퀄컴’ 같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IDQ는 2001년 니콜라스 지쟁 제네바대 교수와 그레구아르 리보르디 박사 등 연구원 3명이 설립했다. 지쟁 교수는 양자기술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존 스튜어트 벨 상의 첫 번째 수상자다. 한국의 대형 통신사가 거액을 들여 직원 30명의 제네바대 학내 벤처(IDQ)를 인수한 사실은 현지 신문의 1면 톱을 장식했다. 창업한 지 17년 만에 해외 대기업 자회사로 편입된 ‘잭팟’이었지만 사무실은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했다. SK텔레콤이 이곳을 주목한 이유는 뭘까.
공장의 한쪽 구석에서는 4, 5명의 직원이 단일광자검출기, 양자난수생성기 등 최첨단 기계를 조립하고 있었다. IDQ는 양자난수생성기(2002년)와 양자키분배 서비스(2006년)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등 해킹이 불가능한 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졌다. 관련 특허가 50개가 넘어 이를 관리하는 직원만 2명을 두고 있다.
SK텔레콤은 이 기술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IDQ와 협업해 2000년대 초반 개당 1500달러였던 양자난수생성기를 몇 달러 수준의 세계 최소형 칩(5×5mm)으로 개발했다. 0이 될지 1이 될지 알 수 없는 양자의 불확정성을 이용해 패턴 없는 난수암호를 생성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자율주행차 등 해킹이 큰 재해로 이어질 수 있는 시대를 맞아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IDQ는 제네바대가 연구한 양자 관련 기술에 대해 가장 먼저 도입하고 제품을 개발할 우선권도 가지고 있다. 현재 제네바대 응용물리학과에서 학위를 받은 10명이 IDQ에서 일하고 있고, 박사과정 2명이 IDQ의 장학금을 받고 있다. 기업이 대학 인재를 키워 기술을 개발하고, 인재는 졸업 후 기업에 입사해 연구를 계속하는 강력한 ‘인재사슬’인 셈이다.
본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제네바대 연구실은 IDQ의 연구개발(R&D) 기지다. 실험실에서는 손가락 마디 크기의 크리스털 큐브 안에서 단일 광자(빛 알갱이) 검출 솔루션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동전 크기의 거울과 렌즈가 파란색 빛을 머금고 있었다. 빛의 알갱이를 잡았다 내보내는 실험이다.
지쟁 교수는 “나도 처음엔 빛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며 “2020년부터 본격적인 퀀텀(양자)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현재 양자암호통신 연구용 장비보다 100배 빠른 IDQ의 상용 장비를 다시 10배 더 빠르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과거 반도체, 광학 분야에서도 양자기술이 적용됐지만 양자 알갱이가 아닌 덩어리를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IDQ가 단일 광자를 활용하는 기술을 속속 선보이며 상용화가 앞당겨지고 있다. 2002년 단일 광자 검출기를 상용화한 IDQ는 파장이 다른 적외선과 가시광선의 단일 광자를 검출하는 솔루션 등 양자암호통신 외에도 양자센서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양자센서 기술은 자율주행차와 바이오 분야에서 잠재력이 크다. 미세한 크기의 양자를 검출하는 기술을 통해 ‘자율주행차의 눈’으로 불리는 ‘라이다(레이저 레이더)’의 정밀도를 지금보다 수십 배 높일 수 있다.
박진효 원장은 “자율주행차는 주변 환경을 3차원으로 인식하는 정교한 센싱이 중요한데, 빛 알갱이를 탐지하는 양자센서 기술로 현재 한 대에 6000만 원 정도 하는 라이다보다 더 정밀하고 사이즈와 가격은 낮춘 제품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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