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경 경기 화성시 일대의 대형마트 주차장, 주택가, 학교 인근에서는 묘한 풍경이 자주 포착됐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사람들이 주변을 오가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운전자들을 뚫어지게 지켜보다 사라지곤 했다. 수첩에 메모를 하고 골똘히 대화도 나눴다.
이들은 신형 싼타페 개발에 착수한 현대자동차 개발진이었다. SUV 운전자들의 습관과 불편함,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찾기 위해 발로 뛰어다닌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소비자를 관찰했다. 약 4년이 지난 2018년, 그 노력의 결실로 4세대 신형 싼타페(싼타페TM)가 세상에 나왔다. 출시 17일 만에 2만 대가 팔리는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2014년 신형 싼타페 개발 과정에선 ‘고객이 싼타페에 무엇을 바라는가’라는 고민이 가장 컸다. 그때 나온 의견 중 하나가 ‘어린 자녀를 통학시키는 여성 운전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뒷좌석에 탄 초등생이 혼자 내리는데 다른 차가 위험하게 다가온다. 엄마는 이를 뒤늦게 발견하고 “조심하라”고 다그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해외에서는 갓난아기나 반려동물이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차에서 내리는 운전자도 포착됐다.
개발진은 현장에서 본 ‘엄마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잊지 않았다. 다가오는 차량을 감지해 뒷좌석 문을 자동으로 잠그는 안전하차보조(SEA), 뒷좌석에 승객이 있다는 사실을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후석승객알림(ROA)을 개발하기로 했다. 세상에 없던 기술이다.
개발에 착수하자 난관도 있었다. 사람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상황과 컴퓨터가 ‘위험하다’고 인지하는 상황이 너무 달랐다. 사람이 보기엔 위험하지 않은데 SEA가 작동했다. 반대로 위험한 상황에서 작동하지 않기도 했다. 위험 상황 실험을 반복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해 사람과 흡사한 수준의 소프트웨어(SW) 공식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류남규 ADAS개발2실장은 “직원이 싼타페 뒤에서 매번 다른 속도로 수백 번 수천 번 뛰기도 하고, 자동차나 자전거를 바꿔 타고 시험해 반응 값을 개선해 나갔다”고 말했다.
ROA를 개발할 땐 승객을 인지하는 방식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체중을 감지하는 방식이 가장 쉬웠지만 짐까지 사람으로 오인하는 단점이 있었다. 호흡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감지하는 방법도 논의했지만 온도, 창문 개방 여부에 따라 오작동이 많았다. 논의 끝에 초음파 센서로 ‘움직임’을 감지하기로 했다. 류 실장은 “아기가 호흡할 때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것까지 감지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개발 기간 3년여 동안 120개 팀, 650여 명의 연구 인력이 수없이 밤을 새웠다.
13일 화성시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에서 만난 싼타페 개발진에게 앞으로 싼타페가 어떻게 진화할지 물었다. 김효린 현대차 제품UX기획실장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의 발전으로 차가 ‘운전자를 이해하는 친구’가 되는 단계까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류 실장은 “10년 내 무인(無人)차 수준의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싼타페TM에는 카카오의 음성인식 기술이 장착돼 음성으로 내비게이션을 컨트롤하거나 음성메모를 남기는 기능도 적용됐다. 음성검색 등을 담당한 이재옥 인포테인먼트플랫폼개발1팀 파트장은 “차세대 싼타페는 사물인터넷(IoT)으로 집 안의 모든 가전, 기능을 컨트롤할 수 있는 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호 중대형RV(레저용차량)총괄PM은 “주행 성능은 유지하고 커넥티비티, 차량 공유, 친환경차 등 다가오는 모든 변화에 가장 빨리 대응해 진화하는 차가 싼타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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