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즐기지 않는 기자는 궁금했다. 내 코엔 다 같은 향이고, 내 눈엔 다 같은 색이고, 내 입엔 다 같은 맛인데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맛과 향을 구분하며 마시는 것일까. 그렇다면 보급형 상품으로 만든 개당 200원대의 인스턴트커피도 상품마다 차이가 있고, 소비자들은 이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동아일보 유통팀 기자 중 커피를 즐겨 마시는 네 명이 인스턴트 아메리카노 커피 5종류를 골라 시음했다. 커피의 이름을 가린 채 블라인드 테스트 형식으로 진행했다.
○ 커피에서 훈제(스모크) 향이?
체험엔 신수정, 강승현, 박은서, 손가인 기자가 참여했다. 색과 향에 대한 평가부터(기자들은 상품명을 모른 채 1번, 2번, 3번, 4번으로 칭했지만 독자 편의상 기사엔 상품명으로 소개한다) 시작해 봤다.
손: 카누와 이디야 제품은 종이컵 벽면에 가루 같은 게 남아 있네요. 충분히 저어서 만들었는데도 미처 녹지 않은 가루가 보여요. 반면 네스카페는 다른 커피보다 색이 투명한 느낌이 드네요.
신: 루카스나인이 보기에는 제일 깔끔해요. 박: (커피가 담긴 컵마다 코를 깊숙이 묻고는) 전체적으로 커피 향은 다들 부족하네요. 그나마 네스카페가 향이 제일 좋습니다.
강: 할리스 커피에서 좀 스모키 향이 나지 않나요?
신: 그러네. 인스턴트커피인데도 고급스러운 느낌이 좀 더 나는걸. 이디야는 좀 달콤한 향이 나고.
손: 그런데 이거 다 종이컵 냄새 아닌가요? 흐흐.
○ 맛을 보자, 맛을
①네스카페 크레마 아메리카노
강: 신맛이 나네요?
박: 네 저도 신맛이 느껴져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파는 커피와 약간 다른 종류의 신맛이긴 하지만.
손: 엄마가 건강해지라며 녹용을 몇 번 사주셨는데 이 커피에서도 같은 맛이 느껴져요. 입에 머금을 땐 한약 비슷한 맛이 느껴지는데 넘기고 나면 괜찮아져요.
신: 한 잔에 4000원 넘는 원두커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산미도 있는 편이고 뒷맛도 깔끔하고 내 입엔 괜찮은 거 같은데요?
②루카스나인 마일드 아메리카노
신: 평소 무거운 커피,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데 루카스나인은 초콜릿 향도 강한 것 같고 나처럼 진한 커피 마시는 사람들은 좋아하겠어요.
강: 저도 그래요. 오늘 마신 커피 중엔 가장 커피 맛이 잘 느껴지네요. 진한 커피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 것 같지만요.
박: 다른 커피는 검은색 느낌인데 이 커피는 진한 밤색으로 보여요. 딱 한 모금 마셨는데 다른 커피들에 비해 마치 ‘카페’가 내 몸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손: 다른 인스턴트커피와 비교했을 때 그나마 원두가 좀 많이 들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드는 맛입니다.
③이디야 비니스트 오리지널 아메리카노
손: 아, 이 맛 익숙한데. 뭐더라…아! 보리차 맛.
신: 손 기자 말대로 맛이 구수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네요. 진짜 신기하다. 누룽지 같은 맛이 느껴지네요.
박: 산미는 덜한 편이고요, 약간 씁쓸한 뒷맛이 남네요.
강: 제가 마시기에는 이 커피가 더 약처럼 느껴지네요. 사람마다 입맛이 다 다르겠지만 전 한 잔을 다 마시기엔 좀 버겁습니다.
④카누 마일드 로스트 아메리카노
신: 산미가 느껴지긴 하는데 산미가 강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좀 싱겁고 무난한 정도? 박: 마실 때마다 꽃내음 비슷한 향이 나요. 기분 좋은 산미도 느껴지는 커피 같네요. 손: 루카스나인과 정반대에 있는 커피 같아요. 루카스나인이 굉장히 묵직했다면 이건 가볍고 대중적인 맛 같습니다.
강: 여러 커피의 장점이 섞여 있는 듯한데 별 특징은 안 느껴져요. 그냥 무난한 느낌의 커피입니다.
⑤할리스 아메리카노 마일드
신: 음. 제 스타일의 커피는 아니네요. 묘하게 퀴퀴한 맛이 나요. 그런데 진짜 신기하네요. 브랜드마다 커피 맛과 향이 다 다르네.
손: 입에 한 모금 들어오는 순간부터 약간 고린내 비슷한, 그렇게 좋지 않은 향이 올라와요.
강: 여러 가지 맛이 느껴지는데 그중에서도 마치 알코올 향 같은 낯선 향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건 왜 그럴까요.
박: 음, 저는 다른 기자들과 생각이 달라요. 전 산미도 적당히 느껴지고 나쁘지 않은 느낌입니다.
○ 총평
신: 동서나 남양 같은 식음료 회사의 제품보다 커피 전문점의 인스턴트커피가 생각보다 너무 맛이 없어서 놀랐어요. 커피 전문점들은 인스턴트커피 제품력을 보다 높여야 할 듯.
강: 인스턴트커피는 마실 거면 가급적 빨리 마셔야 할 것 같아요. 전문점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는 오래 두어도 맛과 향이 비교적 오래가는 것 같은데 인스턴트 아메리카노는 오래 두니까 맛이 확 떨어지네요.
박: 광고를 보면 원두를 내린 맛과 비슷하다고 하던데 인스턴트커피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가성비 측면에서는 충분히 마실 만하네요.
손: 200원짜리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면서 피곤과 잠을 이겨내려는 대한민국의 직장인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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