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묵은 주택청약제도의 문제점과 보완방안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원활한 주택 공급을 돕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 출발한 제도에 정권별로 경기 조절이나 이데올로기 실현 수단이라는 정치적 목적까지 덧씌웠기 때문이다. 제도 하나를 손댈 때마다 이해가 엇갈린 수요자와 정치권의 반발이 거세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후분양제 도입을 적극 추진하는 상황에서 청약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손질은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청약제도가 선분양제를 전제로 만들어진 주택 공급 제도이므로 후분양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도시연구원장은 “현재의 청약제도는 1978년 처음 제정된 이래 지금까지 선분양되는 아파트에서 발생할 이익을 사회적 약자에게 배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후분양제를 의무화하면 이런 기본 전제가 사라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장은 “후분양제 의무화가 시행되면 2300만 청약통장 가입자의 30%가량은 통장을 해지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민주택기금에서 대규모로 돈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행 청약제도가 바뀐 시장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김지현 한양사이버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정부가 시장 안정이나 경기 부양 등을 목적으로 원칙 없이 청약제도를 땜질식으로 개정해왔다”며 “현행 청약제도가 1인 가구 증가나 다양한 주거유형 공급 증가와 같은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근용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3, 4인 가구 기준 주택 공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장 자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잖았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획일적으로 후분양제로 전환하기보다는 인센티브 등을 통해 건설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 교수는 “스웨덴 덴마크 등 복지 우등생으로 불리는 북유럽 국가들도 시장 자율 기능을 제고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성과를 내고 있다”며 “우리 정부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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