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長壽)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염원이다. 기업도 사회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유기체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수명을 연장하길 바란다. 하지만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반면 기업의 기대 수명은 줄고 있다. 미국 컨설팅사 액센츄어는 S&P 500 지수 편입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90년 50년에서 2010년 15년으로 단축됐고, 2020년에는 10년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거대한 변화가 예견되는 21세기 경영 환경에서 어떻게 기업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 프리미엄 경영전문 매거진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245호(3월 2호)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생명체의 장수 비결이 기업 경영에 주는 시사점을 집중 분석했다. 조직생태경영 전문가인 유재우 수피아에코라이프 대표는 이번 스페셜 리포트 기고문을 통해 진화에 성공한 식물의 생존 전략이 기업 경영에 주는 시사점을 분석했다. 유 대표의 기고문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장수 식물과 장수 기업의 공통점
진화에 성공한 식물과 장수 기업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역량이다.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생존 환경은 끊임없이 변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식물종이 사라졌다. 이 와중에 오직 새로운 생존방식에 적응한 종(種)만이 살아남았다. 장수 기업 또한 다양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둘째, 핵심 경쟁력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고유한 특성에 바탕을 둔 차별적 강점을 활용해 경쟁에 승리한 종이 생존과 번영의 기회를 확보했다. 지속적인 성장에 성공한 기업 또한 예외 없이 핵심 기술이나 사업에 집중하고 경쟁 역량을 선별해 다른 기업들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셋째, 생존과 번영의 축적된 노하우를 세대를 거쳐 전이했다는 점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최적화된 생존과 번영의 노하우를 DNA에 담아 후세에 전달하는데 성공한 식물이 오랫동안 권세를 누렸다. 기업 또한 마찬가지로 많은 투자와 노력을 통해 얻은 성공 노하우 혹은 경영 철학을 조직 전체에 내재화하고, 흔들리지 않는 조직문화로 구축해야만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 진화의 열쇠, 경쟁 아닌 협력
과거 생물 진화 연구는 ‘생존 경쟁’이라는 관점을 중시했다. 찰스 다윈은 경쟁에서 이기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아 진화의 기회를 얻는다는 ‘자연 선택’을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협력을 통해 진화한 사례가 속속 밝혀지면서 경쟁 논리만으로는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종(種) 다양성은 개체 간 상호작용의 결과, 즉 ‘협력’을 통해 확보됐고 이로써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동물인 산호는 바다에서 숲과 같은 역할을 한다. 조류 식물을 체내에 기르면서 영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산호로부터 양분을 받은 조류가 광합성을 통해 생산한 영양분을 다시 산호에 공급하면서 산호는 주변의 다른 동물보다 더 빠르게 번식한다. 또 조개, 작은 물고기뿐 아니라 김, 미역, 파래 같은 해조류 등 3만여 종의 생물을 끌어들이면서 ‘바다의 숲’을 형성하고 있다.
육상 생태계의 대표적인 장수 생명체로 꼽히는 지의류는 조류와 균류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간다. 바다에 살던 조류는 균류를 보호막으로 삼아 태양열로 인해 체내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광합성으로 만든 영양분을 균류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지의류는 전 세계에 2만∼3만여 종이 존재하는데 지구상 거의 모든 기후대에 완벽하게 적응해 자생하고 있다.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최하위에 위치하는 약자들이 서로 힘을 합해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는 점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구 역사는 급격한 환경 변화의 연속이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종이 사라지고 또 번성했다. 이 과정에서 생태계 전체가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던 분명한 이유는 생태계가 하나의 유기체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식물의 협력을 통한 진화는 21세기 기업의 생존 전략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업 또한 다양한 개체들이 모여 이룬 유기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존 영역을 확장하고 지속적 번영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21세기 기업의 생존전략, 협력을 통한 진화
중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투자설명서에 ‘생태계’라는 단어를 160번이나 반복 사용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생산자와 소비자 등 플랫폼에 참여하는 개개인이 알리바바의 토대이며 이들의 활발한 활동이 가치 창출의 원천이라는 경영 철학이 반영돼 있다. 생태계를 중시한 것은 알리바바가 처음이 아니다. 생태계라는 용어가 경영학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93년 제임스 무어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논문에서 “기업을 하나의 산업에 속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다양한 산업에 걸친 비즈니스 생태계 속에 존재하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하는 객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한다.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한 산업 간 융·복합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비즈니스 생태계의 진화를 촉발하고 있다. 금융, 제조, 유통, 서비스 등 거의 모든 산업의 비즈니스 인프라가 디지털화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업의 자체 역량만으로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단일 기업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고 기업 간 동맹을 활발히 구축하고 있다. 또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창출하고 그 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앞으로 기업은 비즈니스 생태계를 건설하거나 발전을 주도하든지, 아니면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적극적 동맹관계를 통해 발전을 모색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협력을 통한 진화의 원칙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유재우 수피아에코라이프 대표 supia_eco@naver.com·정리=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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