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가산금리 은행 멋대로…” 소비자 뿔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0일 03시 00분


주택담보대출 ‘고무줄 이자’
영업점마다 시기별로 변화무쌍… 불투명한 산출근거로 고객 피해
당국 실태조사후 ‘규준’ 개정 추진… 은행 “과도한 시장개입 우려”
일각 “대출규제도 변동폭 키워”


A은행은 지난해 1월 혼합형 금리(5년간 고정금리 후 변동금리로 전환)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가산금리를 0.95%로 책정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6개월 만인 7월에는 가산금리를 1.6%로 올렸다. 그 사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5%에서 1.25%로 낮춰 은행의 각종 자금조달 비용이 줄어든 상태였다. A은행은 3개월 뒤인 10월엔 가산금리를 다시 1.25%로 내렸다가 이듬해 4월엔 다시 1.5%로 올렸다.

시중은행들이 자의적으로 가산금리를 정하면서 소비자들이 대출을 받는 시기에 따라 대출 이자를 더 내는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경쟁사 대비 실적이나 영업 목표 등에 따라 가산금리를 조정하고 있어 산출 근거가 투명하지 않다”며 실태 조사를 시작했다.

○ 고무줄식 가산금리 체계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가산금리 산정 체계를 조사한 뒤 이르면 다음 달 가산금리 산정 절차를 정한 은행연합회의 ‘대출금리 체계의 합리성 제고를 위한 모범규준’을 개정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이 모범규준이 정한 절차대로 가산금리를 조정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분석 중이다. 은행연합회는 은행 상품별로 가산금리가 어떻게 산정됐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너무 자주 바뀌는 가산금리가 합리적으로 산출되는지를 집중적으로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산금리가 중요한 이유는 소비자들의 이자 부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에, 혼합·고정형 대출의 경우 은행채 5년물 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결정한다. 만약 두 명의 은행 고객이 각각 연 3.2%와 연 3.5%의 금리로 2억 원의 20년 고정금리 대출을 받는다면 두 사람이 20년간 내는 이자비용은 1200만 원의 차이가 난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산금리는 변동·고정금리할 것 없이 한 번 정해지면 만기까지 똑같이 적용된다”며 “이 때문에 장기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가산금리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고무줄’처럼 자의적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B은행은 2016년 1월 가산금리가 0.95%였지만 3개월마다 1.05%(4월), 1.4%(7월) 1.5%(10월), 1.3%(2017년 1월)로 계속 바뀌었다.

○ “대출 시기 따라 소비자 피해 커” vs “금리는 시장 가격”


은행들은 업무원가, 법적비용, 자본증권발행 조달비용, 리스크 프리미엄, 유동성 프리미엄, 신용 프리미엄 등 총 8가지 항목을 토대로 가산금리를 결정한다. 이 중 금융당국이 주목하는 부분은 ‘목표이익률(은행이 부과하는 마진율)’과 ‘가감조정금리(은행 본점이나 영업점장이 전결로 조정하는 금리)’다. 나머지 항목들은 자의적으로 조정하기 쉽지 않지만 목표이익률과 가감조정금리는 일부 은행이 상대적으로 쉽게 바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고객에게 적용되는 가산금리가 산출된 가산금리와 다르다는 점도 혼란을 키우고 있다.

은행들은 통상 산출된 가산금리보다 금리를 낮춰 적용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사실 대출금리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 경쟁력”이라며 “대출 실적을 쌓기 위해 현장에서는 실제보다 가산금리를 낮춰 적용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가산금리 조사가 ‘시장 가격’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자동차 회사들이 자동차 가격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투명하게 고시하는 것 봤느냐”며 “은행에 있어 금리는 일종의 마케팅인데, 최근 금융당국이 너무 소비자 보호에만 치중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가산금리의 변동 폭이 커진 것은 금융당국 탓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조이라고 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가산금리를 올려 ‘금리가 너무 높으니 다른 은행으로 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며 “금융당국이 자초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가산금리#은행#금리#주택담보대출#대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