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는 기쁨을 누구에게나.” 일본 도쿄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에 자리한 분필제조회사 ‘니혼리카가쿠(日本理化學)공업’. 4일 찾은 공장은 오전 8시 반부터 바쁘게 돌아갔다. 언뜻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작은 공장이지만 종업원 85명 중 63명이 지적장애인이다.특히 제작라인 직원 15명은 전원이 지적장애인이다. 》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없지 않았으나 이 회사는 현재 일본 내 분필업계에서 시장점유율 1위(60%)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매년 성장하고 있기도 하다. 비결은 남다른 집중력이다. 지적장애인은 보통 사람의 10배가 되는 집중력으로 일할 수 있다.
물론 공장 직원들은 남들보다 모자란 부분이 적지 않다.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 글씨를 못 읽는 사람, 눈으로 본 것은 따라 해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데 이런 결점들이 약간의 연구와 배려를 통해 메워지자 여느 인재들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여줬다. 회사 측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래시계를 제공하고 색색 그림으로 이뤄진 공정표를 만드는 등 각자에게 맞는 업무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 애써 왔다.
이들을 채용할 때 회사는 ‘5가지 약속’을 요구한다. △혼자 힘으로 회사에 출퇴근할 수 있을 것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것 △인사를 잘 하고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할 것 △열심히 일할 것 △주변 사람의 얘기를 잘 들을 것 등이다.
입사하면 대부분 정년까지 일하는 충성도를 보인다. 대개 18∼19세에 입사하니 직원의 나이가 곧 경력인 경우가 많다. 항상 웃는 얼굴인 나카야마 후미아키 씨(39)는 20년 경력이다. 분필을 프레스로 절단해 건조 공정에 넣는 일을 한다. ‘뭐가 그렇게 즐거우냐’고 묻자 더듬으면서도 “모두 함께 일하니 늘 즐겁다”고 말했다. 38년 경력의 하라 나오미 씨(57)는 분필을 상자에 넣는 일만을 해 왔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은 어렵지만 손놀림은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임금은 가나가와현의 최저시급인 시간당 956엔. 주 40시간, 한 달 20일 일하면 15만여 엔(약 150만 원)을 받게 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땀 흘려 번 돈이다. 일본 정부에선 1인당 월 2만1000엔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
193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원래 ‘보통’ 분필공장이었다. 일본 최초로 탄산칼슘에 가리비 껍데기 가루를 섞은 분필을 개발해 ‘인체에 무해한 분필’로 문부성 추천을 받은 게 자랑인, 평범한 회사였다. 장애 직원을 고용한 것은 1960년 회사 인근 장애인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여학생 2명을 실습생으로 받은 일이 계기가 됐다.
당시 장애인학교 교사가 근처 공장들을 찾아가 제자들의 취직을 부탁했다. 두 번을 거절했지만 교사는 세 번째 찾아와 “취직이 아니어도 좋다. 제자들에게 한 번이라도 일하는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며 며칠만이라도 실습을 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일본에서 지적장애인은 15세에 장애인학교를 졸업하면 지방의 장애인시설로 보내져 평생을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3대 사장으로 당시 전무였던 오야마 야스히로(大山泰弘) 회장은 순전한 동정심에서 두 여학생을 2주간 실습생으로 받아들였다. 아이큐 70 이하로 읽고 쓰기도 못하는 소녀들은 상품에 스티커 붙이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인 것처럼 열심히 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려도 옆에서 흔들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아침이면 공장 문을 열기 2시간 전부터 출근해 문 앞에서 기다렸다.
2주일이 끝나는 날, 직원들이 ‘우리가 돕겠다’며 2명의 채용을 회사에 건의했다. “아이들이 열심인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일에 더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거였다. 두 소녀는 그 뒤 정사원으로 채용돼 65세 정년퇴직 때까지 무지각 무결근으로 회사를 다녔다.
장애인 고용을 늘리는 과정에서 회사로서도 고민이 없지 않았을 터. 당시 오야마 전무는 우연히 한 스님과 대화할 기회가 생겼을 때 이렇게 물었다.
“장애인을 몇 명 고용하고 있는데 실수도 많고 가르쳐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매일 야단을 맞고서도 다음 날이면 출근 시간보다 빨리 회사에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왜 힘들게 회사에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 돌아온 스님의 답에 그는 무릎을 쳤다.
“당신은 돈 많고 물건을 많이 가지면 행복합니까. 아닐 겁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 칭찬받는 것, 도움이 되는 것,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일’을 통해 사랑받는 것을 제외한 3가지가 충족됩니다.”
이후 회사는 장애인 고용을 늘려 왔다. 3대 사장은 이때 ‘기업의 존재 가치는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훗날 밝혔다.
▼ 2008년 책으로 소개… 日 총리도 국회연설서 언급 ▼
2008년 4대 사장에 취임한 오야마 다카히사(大山隆久·사진) 사장 또한 입사 초기에 고민이 많았다. 20대 후반까지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입사한 그는 “저출산 시대에 분필시장은 갈수록 좁아진다. 기업은 효율을 높이고 이윤을 창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업종을 바꾸고 장애인 고용도 줄여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수년간 회사에서 일을 해본 뒤 “이 회사에서 장애인 고용을 빼면 남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함께 일해 보면 이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절대 하루 8시간을 그렇게 집중해서 일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저희 회사를 장애인을 돕는 사회공헌기업이라 하지만 사실은 장애인들 덕에 회사가 운영되는 겁니다.”
이 회사는 2008년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회사’라는 책에 소개된 뒤 2009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시 총리가 국회 연설에서 언급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매출은 연 6억∼8억 엔 정도지만 매년 늘고 있다(표 참조). 어디에나 그릴 수 있고 물로 지울 수 있는 고형 분필 ‘키토파스’를 개발하는 등 시대 변화에 맞는 제품 개발에 힘을 쏟은 게 주효했다. 4대 사장은 “저희는 일반 회사다.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가 일할 터전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필사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기업’의 저자는 “복지시설에 수용된 장애인 1명에게 국가가 들이는 돈은 연간 500만 엔 선이다. 20∼60세까지 1인당 2억 엔이 들어간다는 얘기”라며 “1인당 연간 100만 엔 정도만 기업에 지원해줘도 기업들은 장애인 고용에 적극 나설 것이고 국가도 엄청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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