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화성 평택 기흥 온양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이하 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을 포함한다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반도체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 결정이 17일 밤 발표되자 일단 안도하는 모습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도 이날 오후 삼성전자의 정보공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한숨은 돌릴 수 있게 됐다. 당초 고용노동부는 19, 20일 해당 보고서를 방송사 PD 등 정보공개를 청구한 제3자에게 제공할 예정이었다.
삼성전자는 이날 공식 입장은 내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단 잠깐이나마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한숨 돌리는 분위기지만 아직 최종 결론이 난 것이 아니고 같은 과정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번 논란이 이어지는 내내 삼성전자는 보고서에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핵심공정 노하우가 들어 있으며, 외부 유출 시 중국 등 후발업체에는 큰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환경부에 1년에 두 차례씩 보고하는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에는 △레이아웃 △공정 및 베이(bay·각 공정설비가 설치된 공간) △공정 간 배열 △설비 기종 △보유 대수 △배치 △사용 화학물질의 종류 및 사용량 등이 담겨 있다.
이날 전문위도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제출된 보고서 중 일부 내용이 30나노 이하 D램과 낸드플래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공정, 조립기술 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인정함에 따라 삼성전자의 이 같은 주장에 크게 힘이 실리게 됐다. 전문위는 “공정 이름과 공정 레이아웃, 화학물질(상품명), 월사용량 등으로부터 핵심기술을 유추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전문위 회의에 참가했던 민간 전문가들은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볼 것을 가장 경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 참석했던 전문가 A 씨는 익명을 전제로 “이런 논의 자체가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전문가라면 작업환경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을 충분히 추론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보고서에 중요한 내용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비전문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차이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들이 수년간 연구해온 산물”이라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반도체 공장의 유해화학물질 정보를 공개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공개한 ‘티어 2(Tier2 리포트)’는 작업환경측정보고서와는 다른 성격의 문서로 영업비밀 사항은 제외된다”고 설명했다. 티어2 리포트 속에 포함된 사업장의 일반적인 정보나 유해화학물질의 저장량 및 취급 현황 등은 한국에서도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지역주민에게 공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측은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는 이미 모든 산재 판정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산재 신청에 필요한 경우라면 해당 내용을 본인도 확인할 수 있도록 열람 등의 방법으로 협조할 것”이라며 “다만 정보 유출에 대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전문위의 판단이 나왔지만 산업기술보호위원회까지 거쳐야 작업환경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는 걸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산업기술보호위 일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나 산업부는 최대한 빨리 개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날 고용노동부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와 산업부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산업부가 국가핵심기술이라고 판단한 만큼 우리도 받아들일 부분이 있으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행심위 결정에 대해서는 “결정을 존중하지만 기업의 영업비밀이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에 우선할 수 없다는 기본 입장은 유지할 것”이라며 “향후 이어질 행정심판에서 이런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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