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도 ‘알바’를 하지만 무리하게 최저임금을 올리면 실업자만 늘 겁니다.”(청년 구직자 박모 씨)
“상사에게 초과 근무수당을 달라고 하면 ‘조용히 나가라’는 악담만 들어요. 새로운 대책보다 기본부터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청년 구직자 김모 씨)
정부는 최근의 고용 부진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보기 어렵다며 앞으로 2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일자리 대책을 쏟아내겠다지만 당사자인 청년들의 생각은 달랐다. 동아일보와 잡코리아가 3월 20∼26일 만 34세 이하 12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청년들은 ‘순리’와 ‘기본’을 강조했다. 》
○ 법 안 지키는 ‘밑 빠진 독’에 실망
김정욱 씨(33)는 일자리 대책에 3번 속았다고 했다. 3년 전 들어간 소규모 기업에선 월급도 제때 못 받았다. 퇴사 후 취업성공패키지를 신청했지만 고용센터는 형식적인 보고서 독촉뿐이었다. 다시 취업한 회사는 청년 목돈마련 프로그램인 내일채움공제를 신청해주지 않았다. 취업 준비-취직-실업 등 각 단계마다 정부 정책을 활용했지만 결과는 늘 기대 이하였다.
청년들은 먼 미래를 보고 구직에 나서는데 정부 정책이 단기적인 임금 보조에 쏠려 있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구직 단계에서 임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실제 창업박람회에서 연봉과 관련해 청년들이 물어봐도 기업들은 ‘추후 협상’이라고 얼버무리는 게 태반이다.
설문에 참여한 김모 씨는 “중소기업 근로자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당초 약정한 급여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일자리가 근로기준법도 안 지키는 밑 빠진 독으로 전락한 현실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떨어진 이유라도 알려 달라” 호소
청년들은 새로운 정책 못지않게 기존 제도 가운데 미흡한 점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한 구직자는 “입사시험에 떨어졌을 때 왜 탈락했는지 이유만이라도 알려주도록 제도화하자”고 제안했다. 고용센터가 기업과 접촉해 탈락 이유를 들어 알려주면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와 민간으로 나뉜 채용 구직 사이트를 한데 묶자는 제안도 나왔다. 청년들이 손쉽게 정보를 얻고 기업도 신입사원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뢰도 높은 사이트를 구축해 관리하면 현재 일부 민간 사이트에 많은 유흥업소 채용공고나 사기성이 농후한 과장 광고를 걸러낼 수도 있다. 한 구직자는 “정장 대여 등 취업 준비 비용을 지원해주는 정책의 경우 예산이 이미 소진돼 저소득층 청년들이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업이 잘돼야 일자리도 늘 것
정부나 기성세대 중에는 청년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다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설문에 참여한 청년 1224명이 도전 중인 일자리는 ‘중견·중소기업’이 38.9%로 가장 많았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채용인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중소기업에 입사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보는 셈이다.
청년들은 중소기업의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는 부정적 인식을 바꿔야 실제 취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한모 씨는 “재직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져야 취업자들도 중소기업에 들어가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새로 입사하는 청년들에게 더 유리한 청년내일채움공제 제도를 도입했다. 당장 취업률을 끌어올리려는 취지지만 재직자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는 청년들의 생각과는 거꾸로 간 셈이다.
청년 고용이 부진한 원인에 대해 설문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2.6%가 ‘경기 침체로 인한 기업 경영환경 악화’를 꼽았다. 정부는 기업이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청년들은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도 늘어난다는 평범한 원리를 잘 알고 있었다. 한 구직자는 “성장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업이 사업을 다각화하기 힘들어 직원도 늘리기 어려워진 것”이라며 경제 성장 및 소비 촉진을 위한 정책과 저출산 해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혁신이 가장 효과적인 일자리 대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면 아무리 많은 지원금을 받아도 일자리 창출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며 혁신이 고용으로 이어지도록 정부 차원의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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